자동차와 반도체 등 선진기술에 대한 집착도 컸다. 결국 ‘인재’와 ‘기술’은 삼성이 오늘날 정보기술(IT) 업계의 글로벌리더로 우뚝 서는 원동력이 됐다.
이 회장은 지난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는 슬하에 3남5녀를 뒀다. 당시 호암은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고 있었다.
이 회장의 형은 고인이 된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과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이다. 누나로는 이인희(한솔그룹 고문), 이숙희, 이순희, 이덕희씨가 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유일한 동생이다.
유년기를 대구에서 보낸 이 회장은 호암과 함께 1947년 상경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으로 일본 도쿄에서 유학했다. 3년간의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에서 중고교를 다녔다. 고교 시절 레슬링부에 들어가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럭비도 즐겼는데 1997년 출간된 에세이에서 “럭비는 한번 시작하면 눈비가 와도 중지하지 않는다. 오직 전진이라는 팀의 목표를 향해”라고 썼다. 당시 스포츠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레슬링 등 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됐다.
고교 졸업 후 이 회장은 호암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에 진학했다. 와세다대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이 회장은 자동차에 심취했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되풀이하면서 자동차 구조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에 올랐다. 미국에서 한 대사가 타던 차량을 4,200달러에 사서 한참 몰다가 600달러를 더 받고 팔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호암 이병철(왼쪽) 삼성 창업주와 유년 시절의 이건희 회장. /사진제공=삼성전자
1972년 서울 장충동 자택에서 촬영한 이병철(왼쪽부터) 창업주와 명희, 건희, 인희씨의 사진. 맨앞은 이재용 부회장. /사진제공=삼성전자
1967년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결혼한 이 회장은 결혼 이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게 된다.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자주 찾으며 첨단산업인 반도체에 눈을 떴다. 32세 때 호암의 반대에도 거의 자기 돈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한 뒤 실리콘밸리를 50여차례 드나들며 반도체 기술 이전에 힘썼다. 삼성의 반도체 신화가 탄생한 순간이다.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 호암은 1977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건희가 후계자”라고 공식화했다. 이듬해에는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호암은 일찌감치 “건희는 취미와 의향이 기업 경영에 있어 열심히 참여해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평가했다.
1978년 삼성종합체육대회에 참석한 이건희(왼쪽) 회장과 이병철 창업주. /사진제공=삼성전자
이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은 부회장에 오른 지 9년이 지나서였다. 삼성 경영권 승계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호암은 애초 이 회장에게 중앙매스컴을 맡길 작정이었다. 이 회장은 1966년 첫 직장으로 동양방송에 입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불거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삼성의 후계구도는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 사건에 호암의 장남과 차남인 이맹희·이창희씨가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고 사건 직후 이창희씨는 구속됐다. 호암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제계에서 은퇴한다.
이후 이맹희씨는 삼성 총수대행으로 10여개의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했다. 당시만 해도 장자상속 원칙에 따라 삼성의 경영권이 장남인 이맹희씨에게 넘어갈 듯이 보였다. 하지만 호암은 자서전에서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봤는데 6개월도 채 못돼 맡긴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져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 투서사건 등이 터지며 이맹희씨는 호암의 신임을 잃었고 호암은 1970년대 일찌감치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한다. 이 회장은 1987년 12월 제2대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는 46세였다. 이 회장은 취임식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19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당시 약속은 삼성이 반도체와 스마트폰·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1위 기업을 일구며 현실이 됐다.
/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