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제시카, 오늘 기분이 어때요? ” “피터, 이 자료 좀 처리해줄래요?”
하나은행에서 수평적 기업문화 확산을 위해 직원들이 서로 직급 대신 영어 닉네임을 부르는 호칭 실험이 시작됐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에서 대표 이하 전 직원이 서로 영어 닉네임을 부르고 있지만 보수적인 문화의 전통 은행이 회사 차원에서 이 같은 시도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하나은행에는 영어 닉네임을 그룹 포털에 등록 후 사용하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본점 기준 지난 20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영업점은 자율적으로 영어 닉네임을 등록해 사용하면 된다.
하나은행은 공지 게시글에서 “변동적이고(Volatile) 불확실하며(Uncertain) 복잡하고(Complex) 모호한(Ambiguous) ‘VUCA’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수평적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전문가로 인정받는 수평적 기업문화의 첫 출발은 서로 영어 닉네임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점은 상시, 영업점은 회의시간에 영어 닉네임을 사용하는 것을 독려한다.
외부와 소통할 때에는 ‘김 과장’처럼 이름과 직급으로 부르는 기존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다. 대부분의 은행이 행원, 대리, 차장, 부부장, 부장 등 전통적인 직급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이 같은 호칭 실험이 조직 내 수평적 문화를 이끌어내고 긍정적 결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앞서 신한은행은 은행 차원이 아닌 그룹 차원의 호칭 변화를 시도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8월 경영지원그룹에서 부서장 외 모든 직급을 ‘프로’로 통일했다. 신한은행 측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다양성·창의성 발현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7년 8월부터 빠른 의사소통과 수평적인 업무환경을 위해 디지털·ICT 그룹에서 선임·수석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씨티은행은 지난 2014년 9월부터 임직원 간 호칭을 ‘님’으로 통일했다. 외국계 은행 특성상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만큼 국적, 성별, 나이 등에 차별을 두지 말자는 뜻에서다. 시중은행과 달리 인터넷은행이나 핀테크 기업에서는 호칭 변화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케이뱅크는 팀장·본부장·행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토스에서는 이승건 대표를 포함한 전 직원이 서로의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빅테크·핀테크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중은행에서도 이를 의식하며 수평적인 회사 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호칭 변화는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