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정양호 "온라인 R&D 평가 도입, 산업기술 연구 효율성 높일 것"

<정양호 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코로나發 비대면 확대로 미룰 수 없는 과제...AI 접목 인프라 구축 한창
데이터 교류·협력 '플랫폼' 1단계 개발 완료, 공정·전문성 등 높여
R&D 샌드박스로 규제 풀고 연구 자율성 부여...산업기술 기획도 강화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기자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국내 연구개발(R&D) 혁신을 통한 기술 능력 제고가 시급한 과제가 됐습니다. R&D 혁신을 위해 온라인 R&D 평가를 도입해 산업기술 연구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은 지난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KEIT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며 이같이 밝혔다. KEIT는 국내 산업기술개발을 기획·조사하고 평가와 관리 등을 맡는 전담 기관이다. 정 원장은 “온라인 평가 도입은 이전부터 검토했지만 ‘대면 방식보다 평가가 미진할 수 있다’는 우려로 주저해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코로나19로 사회나 산업 전반에 비대면 흐름이 확대되면서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대담=김현수 경제부장 hskim@sedaily.com

온라인 기술평가는 올해 3월 KEIT 본사가 있는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며 보름 넘게 R&D 평가 업무가 마비된 것이 계기가 됐다.

KEIT는 연내 시범 운영을 목표로 온라인 R&D 평가를 위한 디지털 평가시스템 ‘스텔라(STELLA)’를 구축하고 있다. 스텔라는 화상 연결이나 실시간 채팅 등 다중 플랫폼에 기반한 것이 특징으로, 이를 통해 기술을 개발한 기업과 평가위원 간 비대면 평가를 가능하게 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산업별 전문가로 구성된 KEIT R&D 평가위원회와 더불어 업계 전문가, 과학계 관계자 등 다른 여러 전문가가 더 많이 참여할 길이 열리는 측면도 있다. 정 원장은 “비대면 평가는 상대적으로 공정성과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스텔라 등 시스템 도입으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스텔라에는 인공지능(AI), 프로세스 자동화 기술 역시 접목해 R&D 평가 절차를 지능화한다.

그렇다고 모든 R&D 평가가 온라인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정 원장은 “현재 방식처럼 1박2일 동안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과제도 분명 있다”며 “과제 특성에 따라 대면과 비대면 방식을 적절히 섞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KEIT는 이와 더불어 최근 산업기술 R&D 교류·협력 플랫폼인 ‘롬(ROME)’의 1단계 구축을 완료했다. 롬은 쉽게 말해 특허, 논문, 국가 R&D 과제 동향 등 R&D와 관련된 각종 데이터를 기업과 유관기관, 대학 등 R&D 관계자가 손쉽게 접하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정 원장은 “롬으로 R&D 동향 정보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석을 통한 연관 키워드 간 관계도까지 검색 한 번으로 한 화면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며 “향후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 롬을 수요자와 공급자 간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연구자 주도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R&D 혁신을 통해 그동안 미진했던 R&D 사업화 비율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가 R&D 사업화 건수와 기술료 징수액은 매년 증가 추세지만 공공연구기관 보유기술 이전율은 최대 40%를 넘기지 못하며, 기술이전 후 사업화 성공률은 10%대로 여전히 저조한 실정이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 총 R&D 예산은 25조원이고 산업통상자원부 R&D만 해도 4조원 규모로 다른 국가와 견줘 적다고 보기 어렵지만 사업화 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라며 “기업이 사업화에 성공하기 위해 자금과 판로개척 확보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시장이 빠르게 변화해 투자 적기를 놓치게 되는 등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와 KEIT는 올 9월 산업 R&D가 사업화에 적합한 기술을 더 많이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R&D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신산업의 시장 진출 허들을 낮추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R&D에도 접목한 것이다. 정 원장은 “우수 R&D 기관에 대해 R&D 규제를 일괄 면제해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국가 산업 R&D 과제를 따낸 기업은 처음 정해진 연구 목표를 변경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R&D로 오히려 시장 트렌드에 뒤지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 원장은 “시장에서 통하는 기술 중심으로 개발되도록 적극적으로 유인할 것”이라며 “또 샌드박스 적용 기업은 연구비 이월, 현금 인건비 사용 확대 등 연구 현장에 적용돼왔던 규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R&D 혁신 방안은 또 코로나19로 인해 경영 사정이 악화한 기업의 현실을 고려해 R&D 민간부담 비율도 유연하게 완화할 방침이다. 산업연관 효과 등을 살펴 사업별·과제별로 대·중견기업 및 중소기업의 민간 현금부담금을 최대 4분의1수준으로 감면해주기로 했다. 평가방식도 바꾼다. 성공과 실패,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평가방식에서 연구 성과의 질에 따라 3단계(우수·완료·불성실수행)로 개편하기로 했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기자

정 원장은 “전후방 기업이 협력하는 대규모·통합형 R&D 역시 도입할 예정”이라며 “후방의 중소기업들과 전방의 대·중견기업을 포함해 산학연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통합형 R&D를 신규 과제의 20% 이상 추진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때 대·중견기업의 매칭 부담을 현재의 절반 수준까지 대폭 경감해준다.

정 원장은 특히 연구자한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제도 개선만큼 중요한 R&D 혁신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 현장에서 연구비 횡령 등 부정행위가 발생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비율로 따지면 최근 연간 1%대에 그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오히려 지나치게 복잡한 R&D 관리규정이 행정 부담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더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연구자가 연구에 사용한 비품에 대한 영수증 처리 등 행정업무에 소요하는 시간이 전체 62.7%나 된다. 정 원장은 “잘못이 발견되면 연구 현장에서 퇴출하다시피 하도록 강하게 처벌하고, 대다수 열심히 하는 연구자나 기업은 R&D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로 시작된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육성 정책은 R&D 혁신이 성과를 낼 토양이 됐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수출규제가 소부장 R&D 생태계 조성에 역설적으로 도움을 줬다”며 “과거 국내 대기업은 낮은 기술력을 이유로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지만 ‘공급망 안정성’이 중요해진 만큼 중기 제품과 부품이 (대기업이라는) 판로를 일정 부분 확보한 셈”이라며 “아직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크고 성과가 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R&D를 통해 중기 기술력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면 건전한 R&D 생태계가 완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R&D가 지적받는 문제점 중 하나가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현장에서 발 빠르게 변하는 기업 아이디어가 R&D에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원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전보다 산업과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정부 R&D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원장은 “이른바 미래산업 ‘빅3’라고 불리는 미래차와 바이오헬스·시스템반도체 등은 융합이 핵심인데 이는 시장 트렌드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그렇다 보니 중소기업은 도대체 어디에 어떤 투자를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 원장은 KEIT가 R&D 평가뿐 아니라 기획 부문 역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KEIT 외에 산업기술 기획을 맡는 또 다른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다. 정 원장은 “KIAT가 전체적인 방향을 정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KEIT는 평가와 R&D 지원에 특화된 기관인 만큼 각 분야마다 구체적으로 디테일을 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 7월 KEIT의 명칭을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산업기술혁신 촉진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해당 법안은 에너지 기술 R&D 기획·관리를 맡는 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KETEP)을 KEIT와 통합하는 내용 역시 포함했다. KEIT와 KETEP로 이원화된 R&D 관리를 통합하자는 취지다. 다만 KETEP 측은 에너지 R&D는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KEIT는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정 과제로 제시한 한국판 뉴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존 산업기술지식정보단을 ‘디지털 혁신단’으로, 제조혁신사업단을 뉴딜제조산업단으로 개편하는 등 한국판 뉴딜의 양대 축인 디지털·그린뉴딜에 부합하도록 조직을 정비했다. 또 정 원장이 주재하는 뉴딜 추진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기도 했다. 정 원장은 “실시간통합연구비관리시스템(RCMS) 고도화를 위해 지능형 챗봇 서비스, 자금집행 데이터 AI 분석 등을 도입할 것”이라며 “미래차 핵심부품, 미세먼지 저감, 친환경 공장(클린 팩토리), 이차전지 소재부품 개발 등 뉴딜 관련 R&D 과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고 강조했다. KEIT는 또 내년 뉴딜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50% 늘어난 3,934억원으로 책정하기도 했다. /정리=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61년 안동 △안동고 △서울대 경제학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1984년 행정고시 28회 △2011년 지식경제부 산업기술정책관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 실장 △2016년 조달청장 △2019년~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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