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10년 내다본 이건희처럼...K뉴딜도 미래보고 로드맵 짜야"

[내가 본 이건희 회장-양향자 민주당 의원]
반도체 성공 배우려는 사람
정치권 와보니 아무도 없어
100조 기업 흔들지만 말고
또 다른 삼성 만들 고민 필요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경제DB

“이건희 회장은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내다보고 반도체 시장의 10년을 내다보면서 큰 계획을 짰습니다. 한국판 K뉴딜 역시 미래를 내다보고 로드맵을 그려야 합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의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선각자’로 기억하며 이같이 밝혔다. 양 의원은 이 회장을 “사업 로드맵이 나오면 어떤 수단을 사용하고 거기에 맞는 스펙은 무엇인지, 이에 필요한 인력과 소프트웨어는 무엇인지 꼼꼼히 따지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권에 와 보니 반도체의 성공을 배우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어떻게 삼성을 무너뜨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또 다른 삼성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은 또 이 회장에 대해 “일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이 회장이) 심어줬다”며 “나는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였지만 세상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주신 분”이라며 추모했다. 양 의원이 지난 1993년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이던 시절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포했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6일 오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사진공동취재단

양 의원은 이 회장이 강조한 ‘기술의 중요성’과 ‘시스템 경영 철학’이 현재의 삼성을 만들었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이 회장이 기술은 오류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또 1993년부터 지금까지 28년 동안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에는 특별한 문화와 일하는 방법이 있고 거기에는 ‘시스템 경영’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기술에 대한 신념은 정치인 양향자 의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양 의원은 지난 6월 “과학기술부총리 설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 데 이어 7월 ‘여야가 함께하는 미래 플랫폼’ 세미나를 열어 이영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기술 패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이러한 성과를 당원들로부터 인정받아 8월에는 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며 지도부에 다시 입성했다.

양 의원은 “정치권에 와 보니 반도체의 성공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규제 역시 반도체 패권이 없었다면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지금 우리에게는 반도체라는 기술 패권 하나밖에 없고 이를 세운 사람과 기업은 재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2년 1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71세 생일 및 삼성 CEO 신년만찬을 마치고 행사장을 나서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양 의원은 ‘삼성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라는 화두도 정치권에 던졌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5년 동안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만약 이 부회장이 없다면 누구를 경영자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냐”며 “그가 책임질 일은 책임을 지고 기술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100조 기업은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데 이를 흔들려고만 하지 말고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이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은 이 회장이 세운 사내대학에서 일했던 경험, 7·4제(7시 출근 4시 퇴근) 시행 이후 자기계발에 전념할 수 있었던 기억들도 풀어놓았다. 그는 “덕분에 하루 다섯 시간 공부하고 2년 6학기 동안 4년제보다 더 내실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며 “이 회장은 한 명의 인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는데 그만큼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이 회장의 ‘인재 철학’은 양 의원이 지난 2018년 말부터 11개월 가량 국가공무원인재개발연구원장으로 일하며 공무원 사회를 바꿔놓기도 했다, 그는 “이 회장이 일하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며 “반도체의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을 통해 2만 명의 공무원을 교육했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이 원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에는 인재개발원에서 ‘퍼스트 펭귄’상이 처음으로 제정됐다. 펭귄 무리에서 사냥을 위해 처음으로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처럼 조직 내에서 혁신과 도전을 시작하는 이를 독려한다는 의미다. 양 의원은 “공직에서 수십 년 일하던 분들이 새로운 세상을 봤다고 할 정도였는데, 모두 삼성에서 했던 것들”이라고 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