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52시간제 현장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은 고사하고 적응 조차할 엄두도 못 낸다. 그러는 사이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종료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방안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말로 계도기간을 종료하려는 것도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개정안 논의가 시작되는 만큼 만들어낸 보완책은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미 법으로 시행된 제도를 ‘땜질’로 유예해주는 것을 마냥 이어가기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주 52시간제 확대에 따른 유연근무제 대안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내년 이후 코로나19로 위축된 경기가 회복될 때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내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도 적용이 돼 일각에서는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시행시기를 미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관계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중기 업체들은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종료 이후에 대해 무방비 상태다. 내년부터 주 52시간제를 위반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형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해 시행 유예가 아닌 처벌 유예를 줌으로써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시간을 부여했지만,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상당수 업체의 일감이 줄어 실질적인 대응 준비를 하지 못했다.
가장 비상인 분야는 업종 특성상 특정 시기에 업무가 몰리는 게임 등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 출시나 업데이트 일정에 따라 업무 강도가 유동적으로 조정되는데 직무와 업종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게임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협회장은 “영세한 개발사까지 시스템을 갖추려면 유예기간이 좀 더 필요하다”며 “유휴자원이 없는 중소기업은 주 52시간을 지키겠다고 일정을 뒤로 미뤘다가 비용이 더 들어 회사가 망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 등의 분야도 잠재적인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직원들 입장에서는 연장 근무가 줄어들면서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시장 환경이 너무 안 좋아 야근 등 잔업이 많지 않았다”면서도 “내년에 시장이 회복된다면 올해 매출 손실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이 투입돼야 할 수도 있는데 그 점은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를 토대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이번 국회에서 확정한다는 목표다. 탄력근로제는 업무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제도로 일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근로시간을 늘리되 비성수기에 근로시간을 줄여 결과적으로는 법정근로시간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업계에서는 현재 수준의 탄력근로제 개정으로는 인적·물적·재정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의 주 52시간제 부작용을 푸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경직적 근로시간 체계로는 현장변화의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도 크다. 탄력근로제뿐만 아니라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현행 1개월) 또는 특별연장근로를 신고제로 바꾸거나 광범위하게 인정해주는 방안 등의 유연근무제 대응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나 노동계 반발이 커 논의 자체도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대한도를 부여해 근로시간을 연간 단위로 총량규제하는 방안이나 특별법을 통해 한시적으로 효력을 정지할 필요가 있다”며 “입법시기나 시행시기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혜진·이재명·연승기자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