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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가 27일 격론 끝에 제시한 반대의 근거는 ‘주주가치 훼손’이다. 물적분할은 지배주주에 유리하지만 정보접근성 등에 한계를 가진 일반주주들로서는 결국 지분가치 희석을 감내해야 해 불리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단기적 이익에만 매몰돼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회사 가치를 키우기 위한 장기적 측면에서 보면 물적분할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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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등은 이날 국민연금 결정에 앞서 ‘찬성’ 의견을 권고하면서 물적분할 이후 신규 투자자금을 유치하면 재무구조 개선 및 신규 성장동력 확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LG화학의 연간 투자 추이를 보면 지난 2017년 2조4,000억원에서 2018년 4조3,000억원, 지난해 6조5,000억원으로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외부자금 투입 없이는 경기 충격 등을 버텨내기 어려운 구조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주주구성이 복잡한 인적분할보다 물적분할이 투자 유치에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며 “앞으로 기업들은 물적분할을 통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지 말고 외부차입이나 회사채 발행으로만 투자금을 조달하라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삼성전자(11.10%), 현대자동차(11.52%) 등 주요 기업의 국민연금 지분율도 나란히 10%를 넘겨 이번 임시주총 결과에 따라 자칫 기업들의 분할 결정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떠나 국가 대계(大計) 사업을 국민의 돈으로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게 옳으냐는 비판도 나온다. 전기차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로 불릴 만큼 LG그룹은 국가 차원의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이기 때문이다. LG화학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보유한 수주잔액은 약 150조원으로 이를 완성차 업체들에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국가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점을 감안하면 정반대의 처지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분할안 자체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LG화학의 주주구성을 보면 국민연금과 순수 국내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합산 약 20% 수준에 불과해 ‘대세’를 뒤집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하며 투자자 보호가 중요 가치로 떠오르자 국민연금이 부화뇌동한 것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기업의 중장기 성장성보다 당장 개인투자자들의 반대여론에 휩쓸린듯해 씁쓸하다”고 말했다.
/서일범·한재영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