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베네수엘라행 특급열차…집단환각서 벗어나야”[청론직설]

<김상철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
獨서 폐기된 낡은 이론, 한국선 '시대정신'으로 숭배
100년 전 자본주의가 근간…4차혁명시대엔 안 맞아
투기자본 판 깔아주는 '규제3법' 일자리까지 좀먹어
시장경제 원리 살려 규제혁파·노동개혁 속도낼 때

김상철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은 2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대한민국을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특급열차에 올라타게 만들 수 있다”면서 “재벌 원죄론에서 나온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박탈감과 갈등을 증폭시켜 국가 경제의 몰락을 재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호재기자


이달 초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학계에서 나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원 일동으로 발표된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은 “기업 규제 3법을 둘러싼 경제민주화 논의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면서 경제민주화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입장문 작성을 주도했던 김상철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은 28일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연구자 입장에서 무분별하게 거론되는 정체불명의 경제민주화 논의를 방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세대 교수인 김 회장은 “시대착오적인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특급열차를 탄 대한민국이 집단 환각에서 조속히 깨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재벌 원죄론에서 나온 경제민주화는 사회적 박탈감과 갈등을 증폭시키며 국가 경제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질서경제학회에는 주로 독일어권에서 경제·경영학을 공부한 300여명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학회 차원에서 정치권을 겨냥해 경제민주화론을 비판했다는 점이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경제민주화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 사회에 혼란과 오해를 빚으면서 큰 폐해를 가져온다고 판단했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내세우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므로 이를 용납할 수 없다. 독일에서 공부했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경제민주화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으니 독일 경제정책을 연구해온 우리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독일에서 거론됐던 경제민주화는 무엇인가.

△독일의 ‘경제민주주의’는 과거 사회주의적 전통에 기반해 정립된 개념이다. 질서자유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시장경제와는 명백하게 대립하는 개념이다. 현재 독일에서 경제민주주의는 일부 극좌파와 노조에서만 주장할 뿐 사실상 폐기된 이론이다. 100년 전의 자본주의 문제에 기초한 경제민주주의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고민을 반영한 셈이다. 독일은 이미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론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나.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역사적 뿌리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독일의 경제민주주의가 사회적 시장경제와 같은 맥락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는 궤변일 뿐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에 모든 문제를 갖다 붙이면서 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 실업난 등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민주화를 감성적 개념으로 포장해 우리 사회를 포획했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 기업에 문제가 많고 다른 나라에는 재벌이 없기 때문에 ‘기업 규제 3법’을 도입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무책임한 얘기다. 무엇이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국가 경제에 좋은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원인 분석도 그렇거니와 해법도 동의하기 어렵다.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도 논란을 빚고 있는데.

△김 위원장은 헌법에 담긴 경제민주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지만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에도 개념에 대해 합의한 바 없는 ‘알박기’ 규정에 불과한 것이다. 당시 헌법개정 소위원장을 맡았던 현경대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가 정부 주도의 관치경제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로 전환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재벌 규제 위주의 김종인식 경제민주화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우리 헌법이 세세하게 경제 분야를 담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독일이나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헌법에 경제질서를 따로 규정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유 이념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1949년 제정된 기본법에서는 바이마르공화국 헌법과 달리 특정한 경제질서를 규정하지 않았다. 경제질서란 항상 변화할 수 있고 특정한 성격을 부여하면 그 이외의 것들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정책의 중립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큰 틀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면 약간의 충돌이 있더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경제민주화론의 폐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나.

△지금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특급열차에 올라탔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우이길 바라지만 현 정권 주도 세력이 베네수엘라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국가 개입주의를 넘어 차베스식의 포퓰리즘으로 가고 있다. 개헌 시도도 그렇거니와 검찰·사법부·언론 등을 장악하려는 행태는 우고 차베스 정권과 너무나 유사하다. 차베스는 기업을 국유화해 노동자들에게 경영을 맡기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추진 중인 기업 규제도 해괴망측한 것들이 많다. 이대로 진행되면 베네수엘라식 사회주의로 갈 가능성이 높다.

김상철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은 2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는 대한민국을 베네수엘라로 향하는 특급열차에 올라타게 만들 수 있다”면서 “재벌 원죄론에서 나온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박탈감과 갈등을 증폭시켜 국가 경제의 몰락을 재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호재기자

-최근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기업 규제 3법’도 경제민주화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데.


△기업 규제 3법은 국가권력의 비대화를 초래하고 정상적인 기업 경영 활동을 가로막아 심각한 경제 위축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로 해외투기자본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3%룰’은 굉장히 위험한 제도다. 우리 기업들이 투기자본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핵심 기밀도 유출될 우려가 크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상장조차 꺼리고 역차별을 받는 사태마저 발생한다. 지나친 기업 집중이나 남용은 규제돼야 하지만 지구상에 없는 법을 만들면 어느 기업이 투자할 의욕이 나겠나. 정부가 자국 기업에 불리한 정책을 만들어 국민의 피땀으로 일군 기업을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

-여권의 근본적인 기업관이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온갖 규제법을 쏟아내다 보니 투자 위축을 초래하고 외국 기업과 제대로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있다. 규제 3법은 대기업 자체가 악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으로 4차 산업혁명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정부가 시장에 대한 불신과 기업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기업을 북돋우기는커녕 오히려 반기업 정서를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 경제의 위기 돌파 해법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기업이 투명한 경영과 고용 창출을 통해 국민경제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되찾기 위한 기업가정신의 고양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사유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하고 시장경제원리를 강화해 기업 경영과 창업에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기업 규제를 전면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우리의 노동개혁 추진 방향과 관련해 독일의 ‘하르츠 개혁’ 모델이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주도했던 하르츠 개혁은 노동시장 개혁을 핵심으로 삼아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좌파정권의 우파식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독일은 통일 이후 장기 실업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실업급여를 삭감하거나 수령기간을 줄이고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보장제도를 바꿨다. 하르츠 개혁의 또 다른 핵심은 국가의 비중을 낮추는 대신 개인의 책임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도 진보정부가 들어섰으니 오히려 우파적인 개혁을 더 잘할 수 있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크다. 정부가 단지 표 계산만 하지 말고 국가 미래를 위해 노조를 설득하고 적극적으로 노동개혁에 나서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독일식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지고 기업 경영에 부담을 안겨주는 등의 부작용 때문에 도입 기업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알리안츠나 바스프처럼 노동이사제에 따른 부작용으로 독일 국적을 포기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규제가 심해지자 유럽연합(EU)의 법체계를 적용받는 유럽주식회사(SE)로 변신한 것이다.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로 상속세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최대 65%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은 기업의 지속 경영 차원에서 큰 문제다. 독일의 경우 상속세가 20%에 머무르고 있는데 고용만 계속 유지한다면 제로 수준에 가깝게 낮춰준다. 상속세 부담이 적다 보니 독일의 작은 마을을 찾아가도 가족 중심으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장수기업을 찾아볼 수 있다. 독일 ‘히든챔피언’의 절반 이상이 대대로 상속해가며 경영을 이어가는 가족기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크다.

△독일에서는 우리와 달리 개인에게 한 푼도 공짜로 주지 않는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를 지원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에게 외식하라며 돈을 주는 일은 없다. 정부가 가장 중요한 재원 조달에 대한 고민 없이 복지정책만 늘어놓는 것은 문제다. ‘문재인 케어’도 당장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갈수록 적자가 쌓이고 있다. 결국 재정을 동원해 메워야 하는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을 도입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위험한 얘기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다는 책임감을 갖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브레멘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과 보건복지부 복지정책평가위원,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등을 거쳐 현재 경기복지재단 정책위원을 맡고 있다. 한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차기 한국재정정책학회장으로 내정됐다. 주요 저서로 ‘한국 복지국가의 정치경제’ ‘한국 경제의 기적과 환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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