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정부가 기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신용공급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꼼꼼한 여신심사를 통해 좀비기업을 걸러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은행인 한은의 이 같은 지적은 포스트코로나를 대비한 구조조정에서 금융이 좀 더 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앞서 한은은 ‘2019년 기업경영분석’ 보고서에서 지난해 기업 3곳 중 1곳은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 소속 이현창 경제연구원 과장과 이현서 통화정책국 조사역은 29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금융제약 점검’ 보고서를 통해 “최근 들어 금융제약의 정화 효과가 약화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금융제약은 기업들이 투자 등을 목적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외부자금을 빌리려고 해도 금리가 높거나 규모가 작아 원하는 만큼 빌리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금융제약이 발생하면 투자를 위축시켜 생산성을 저해한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금융제약이 저생산성 기업을 퇴출시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해야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정화효과가 부각되고 있다.
금융제약 점검 보고서에서 지난 2008~2018년 우리나라 제조업 외부감사기업 9,52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내 금융제약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2011년과 금융규제가 강화된 2017년에 각각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기업의 금융제약 여부를 내부자금 의존도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투자에 필요한 외부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없을 경우에는 내부자금 규모와 관계없이 투자 규모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저생산성 기업의 추정계수는 2009년 0.122, 2010년 0.119를 기록한 뒤 2017년에는 0.004로 대폭 낮아졌다. 고생산성 기업의 추정계수는 2009년 0.071, 2010년 0.055를 보였는데 2017년에도 0.057로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추정계수가 높을수록 내부자금 의존도가 높다는 것으로 외부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을 나타내는 금융제약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의 금융제약은 과거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반면 생산성이 낮은 기업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좀비기업을 걸러낼 수 있는 정화효과가 사실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셈이다. 보고서는 “최근 기업 신용위험 확대로 담보·보증 대출 비중이 증가한 가운데 금융비용 부담이 낮아지면서 저생산성 기업이 금융제약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좀비기업의 비중은 2016년부터 늘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은 전체 기업의 36.6%를 차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은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낸다는 의미다. 이 비율은 2017년 32.3%, 2018년 35.2%에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의 안정성 지표인 부채비율은 2018년 111.1%에서 지난해 115.7%로 증가했다. 1년 동안 회사채 순발행 금액이 6조3,000억원에서 15조9,000억원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차입금 의존도 역시 28.8%에서 29.5%로 증가했다.
한은 보고서는 최근에는 금융제약이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정부의 정책금융 등 기업지원이 크게 늘어난 만큼 정화효과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현창 과장은 “정부에서 기업 지원을 발표하고 있는데 신용공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생산성 기업 퇴출이 필요하다”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생산성 수준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통해 효율적 자원 배분을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