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중 갈등은 일반적으로 기업에 악재다. 코로나19는 제품의 공급과 수요에 충격을 주고 미국의 대중국 제재는 최대 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은 삼성전자의 올 3·4분기 실적에 호재로 작용했다. 각국의 경기부양책 속에 코로나19 사태 초기 억눌렸던 가전과 스마트폰 수요가 크게 늘며 완제품과 부품 판매를 끌어올렸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한 반사이익도 반도체 부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스마트폰·가전 판매 늘고 반도체도 선방
삼성전자의 TV와 생활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소비자가전(CE) 부문 영업이익은 1조5,6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종전 최대치인 지난 2016년 2·4분기의 1조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쓰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을 중심으로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펜트업 수요가 강하게 일었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여행을 못 가고 집에만 있게 된 소비자들이 가전제품 구입에 지갑을 열면서 초대형 QLED TV, 비스포크 냉장고 등 프리미엄 제품 판매가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로 위생 가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건조기·에어드레서 등의 판매도 증가했다. 김원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상무는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는 펜트업 효과와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TV 교체 수요가 발생했다”며 “온라인 판촉을 강화하고 디지털 중심 마케팅을 펼쳐 프리미엄 제품 판매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반도체도 우려에 비해 좋은 성적을 냈다.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3·4분기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3·4분기 반도체 영업이익은 5조5,4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소폭 늘었다. 서버 수요 약세에도 언택트(비대면) 확산으로 모바일과 PC 수요가 견조했고 신규 게임 콘솔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판매도 늘어난 덕분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규제를 앞두고 반도체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화웨이의 긴급주문이 몰리며 반도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최근 IBM·엔비디아·퀄컴 등 큰손 고객들의 주문을 대거 따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은 분기 최대 매출을 올렸다.
4분기 메모리 약세·경쟁심화로 수익성 하락 전망
삼성전자의 올 4·4분기 실적에 대한 전망은 밝지 못하다. 삼성전자는 4·4분기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수요의 약세가 지속되고 가전·스마트폰 등 세트 사업의 경쟁도 심화돼 전체적인 수익성 하락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당장 지난달 15일부터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가 본격화돼 화웨이로의 메모리반도체 공급이 끊겼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화웨이를 대체할 중국 스마트폰 업체를 적극 발굴할 계획이다.
반도체 사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4·4분기에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부담스럽다. 글로벌 서버 업체들은 코로나19 초기 공급 차질을 우려해 반도체 재고를 늘렸다가 이후 추가 주문을 줄이면서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내년 상반기에나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무는 “서버 고객들의 재고 조정이 올 4·4분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로 넘어가면서 서버 업체들의 재고가 건전화되고 보수적이던 투자 역시 내년 상반기 들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은 4·4분기가 계절적 성수기지만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며 마케팅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진투자증권은 4·4분기에 화웨이 반도체 판매 감소, 세트 출하량 급증에 따른 조정 과정 등으로 영업이익은 3·4분기보다 줄어든 10조5,0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콘퍼런스콜 시작에 앞서 25일 별세한 이건희 회장을 추모했다. 서병훈 IR담당 부사장은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를 작은 전자 회사에서 현재의 글로벌 정보기술(IT) 리더로 탈바꿈시킨 진정한 비전가였다”면서 “삼성전자 임직원 모두는 이 회장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며 그의 유산은 영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전희윤기자 jy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