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석달이 흐른 1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비어 있다./연합뉴스
# “5억원 전세를 우선 보증금 4억원, ‘깔세(선 월세)’ 1억원으로 반전세 계약 형태로 체결합니다. 대신 특약에 ‘2년 후 퇴거 시 선납한 월세를 반납한다’는 내용을 넣습니다. 만약 2년 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경우 1억원은 돌려받지 못합니다. 적지 않은 액수를 포기해야 하는 만큼 청구권을 쓰지 않고 나갈 것이고 나가지 않더라도 1억원을 벌 수 있습니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석 달이 지나면서 전월세 시장에 꼼수가 넘쳐나고 있다. 집주인은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임차인은 버티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중재할 정부는 갖가지 꼼수에 대해 임대인과 임차인이 소송을 걸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한 전문가는 “임대차법 시행으로 착한 임대인과 세입자는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앞서 언급한 깔세 외에도 다양한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자녀에게 증여를 한 뒤 최대 4개월간 증여세가 유예된다는 점에 착안한 방법도 있다. 임대차 계약 만기 6개월 전쯤 집을 자녀에게 증여하고 새로 아파트 명의를 넘겨받은 자녀가 ‘실거주하겠다’며 세입자에게 퇴거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후 증여세 유예 기간인 4개월이 지날 즈음에 증여를 반환하고 세입자에게 ‘청구권을 쓰려면 쓰라’고 말을 바꾼다. 세입자가 새집을 계약한 상태라면 다시 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세입자에게 ‘실거주하겠다’며 퇴거를 요구한 뒤 세입자가 집을 구할 때쯤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실거주를 못하게 됐다’고 말을 바꾸는 방법도 회자되고 있다.
세입자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맞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입자들이 모인 한 오픈 채팅방에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되 6개월 혹은 1년만 연장하겠다고 협의해 계약을 연장하는 방안이 올라와 있다. 단기 연장은 집주인도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으로 계약을 다시 체결하더라도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의 2년 거주는 보장된다. 집주인과 감정은 상하겠지만 당장 살 집이 궁하니 어쩔 수 없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밖에 집주인이 매도 의사를 밝히면 최대한 집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매매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언급되고 있다.
집주인과 세입자들 모두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며 ‘꼼수 대결’을 벌이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일일이 모든 방안에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합법을 가장했더라도 그 상황 자체가 거짓말이라면 불법”이라며 “이런 경우 세입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만 이런 경우 민사의 영역이라 다툴 방법은 세입자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