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비어 있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3개월이 흐르면서 전세대란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연합뉴스
KB국민은행의 지난 10월 전국 전세수급지수가 191.1로 2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전문가들은 임대차법 시행이 부른 예견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각종 규제로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가운데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매물 품귀가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어서다. 지방에서도 2~3개월 사이 전세가가 억 단위로 상승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전세난은 매매수요를 다시 촉발시키고 있다. 지방에서도 5년 만에 아파트 ‘사자’ 수요가 ‘팔자’ 수요를 앞섰다. 전국 곳곳에서 셋집 구하기에 지친 임차인들이 내 집 마련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전세대책은 이번 주에도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임대주택 공급을 당장 확대하기도 어렵고 월세 세액공제 확대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매시장을 자극하지 않고 전세난을 잠재울 마땅한 대책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매물 줄고, 전세난은 전국으로 확산=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개월 전과 비교해 71.3% 줄어든 1만1,064건으로 조사됐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매물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다. 이는 서울뿐만이 아니다. 전북(-71.5%), 세종(-65.5%), 대구(-60.8%), 충남(-60.6%), 경기(-58.9%) 등에서도 매물이 크게 줄었다.
매물 감소는 전세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이 내놓은 10월 월간주택가격동향을 살펴보면 전셋값 상승은 가파르게 이뤄져 서울 아파트 10가구 중 4가구는 전셋값 평균이 6억원을 넘겼다. 서울 아파트 5분위별 전세 평균 가격을 살펴보면 이달 4분위(상위20~40%) 아파트 전세 평균값이 6억1,963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방도 대전·울산 등 주요 광역시를 중심으로 1억~2억원씩 전셋값이 올랐다. 대전 유성구 상대동 도안신도시 ‘트리풀시티(전용 102㎡)’는 지난달 23일 6억5,000만원(27층)에 최고가 전세 거래가 성사됐다. 4월(4억3,000만원)과 비교하면 전셋값이 2억원 이상 뛰었다.
◇전세난에 세입자들 아파트 사자=전세난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매물 절벽, 전셋값 급등에 지친 세입자들이 ‘내 집 마련’으로 선회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97.6을 기록하며 반등했다. 가격 급등에 따른 피로와 각종 규제로 매수자들의 관망세가 이어지며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7월부터 최근까지 하락을 이어가던 상황이다.
경기도의 매매수급지수는 같은 기간 109.5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의정부·동두천 등이 포함된 경원권의 매매수급지수는 117.3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방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0.1을 기록하며 기준선(100)을 넘겼다. 해당 수치가 100을 넘으면 매수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다. 지방 아파트 매매수급지수가 100을 넘긴 것은 2015년 12월 이후 5년여 만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최근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매매가격과의 차이를 급격히 좁혔다”며 “이에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매수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세대책, 이번 주 발표 힘들 듯=이번 주에도 전세대책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가 현재 전세난을 해결할 단기 처방전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번주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수요일에 열리는 부동산 시장 관계장관회의도 잡혀 있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질 좋은 중형 공공임대아파트’ 공급을 공식화했다. 단, 질 좋은 중형 공공임대 역시 당장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힘들다. 여기다 정부는 분양 물량이 전세 물량으로 전환될 경우 매매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공공분양 물량을 임대로 전환해 공급하는 방안이 전세대책으로 부적절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월세 소득공제 확대 방안도 만만치 않다. 세액공제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고 해도 효과가 미미한데다 오히려 월세 지원에만 앞장선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표준임대료 등 시장에 다시 한 번 개입하는 방안도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 결국 정부가 7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시행한 여파로 전월세 시장의 불안이 심화했기 때문에 ‘시간이 답’ 아니겠냐는 자조적인 시각도 내부적으로 나온다. /권혁준기자 awlkwon@sedaily.com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