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국의 대선이 이틀 남았지만 선거 결과는 여전히 단정하기 어렵다.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8만명을 넘어섰지만, 경제성장률이 2·4분기 -31.4%에서 3·4분기 33.1%로 V자 형태로 급반등했다. 미국의 분기별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을 연간 기준으로 환산한 연율이기 때문에 진폭이 크게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전 분기 대비 증감률 방식으로 계산하더라도 3·4분기 성장률은 8.3%로 분기 성장률 집계가 시작된 지난 194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경제성장률의 깜짝 반등이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의 이변)’가 될 수 있을지는 선거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미국의 역대 대선에서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결과를 선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전투표자가 9,000만명을 넘어서 지난 대선 총투표 수의 66%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라는 대선 슬로건이 말해주듯이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가 강화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 바이든 후보의 경우 뚜렷한 자기 색깔을 나타낸 적이 거의 없다.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로의 회귀 느낌을 주는 ‘더 나은 재건 (Build Back Better)’이라는 대선 슬로건 역시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의 경제정책인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의 핵심은 ‘증세’와 대규모 ‘친환경 공공투자’이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35%에서 21%로 낮췄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8%로 높이고 소득세 최고세율도 39.5%로 인상할 계획이다. 또한 셰일오일 기업을 적극 지원했던 트럼프와 달리 청정에너지 분야에 2조달러를 투자해 1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을 선언했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다면 ‘탄소조정세’가 주요 통상이슈로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정책의 경우 바이드노믹스 역시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한다는 점에서는 트럼프노믹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방법론은 차이가 있다. 트럼프가 힘에 기반한 일방적, 거래 중심적 방식을 취한 것과 달리 바이든은 다자주의 시스템에 기반을 둔 협력적, 규범 중심적 방식으로 통상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 등과의 다국적 협력을 통해 환경·인권 문제까지 범위를 넓혀 압박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돌발적이기는 하지만 거래가 가능한 반면, 바이든은 원칙을 강조하면서 훨씬 더 까다로운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응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한국도 더 이상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단순도식을 따를 수 없다. 경제민족주의가 본격화되면서 내년에도 ‘각자도생’을 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가 미중 일변도의 세계 경제 흐름을 다극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할 여지도 상당히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다시 주목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소기구를 사실상 무력화시킨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WTO의 입지는 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WTO 사무총장 최종 선거과정에서 미국이 나이지리아 후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공개적으로 한국 후보를 지지한 것도 WTO를 사실상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최종후보 추천은 회원국의 선호도뿐 아니라 지지국의 지역적 분포, 경제적 수준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지기 때문에 승부가 뒤집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희 후보에 대한 역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고려하면 최종적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이 집권할 경우 다자체제 운용의 투명성 제고, 디지털 무역장벽과 서비스 및 투자 장벽 해소를 위한 규범 제정, 보조금 및 국영기업에 대한 규범 개선 논의가 지금보다는 속도감 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지지를 받고 선출된 사무총장에 대해 미국이 어느 정도 협조할지는 불확실하다. 결국 우리 입장에서는 다자체제의 복원과 같은 통상환경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디지털경제 블록과 같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준비를 철처히 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