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메인 페이지와 로고./EPA연합뉴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법정 다툼이 시작되면서 넷플릭스의 ‘무임승차’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네이버·카카오 등 망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과 달리 소송까지 걸어가며 무료로 국내 통신망을 사용하려는 넷플릭스 탓에 국내 기업들의 콘텐츠 경쟁력이 약화되고, 소비자 부담만 커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김형석 부장판사)는 지난 30일 넷플릭스 인코퍼레이티드 및 한국법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1차 변론을 열어 재판을 개시했다. 이번 소송 결과는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망 사용료와 관련해 해외 사업자에게도 의무를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국내 제도 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측은 법정에서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인 SK브로드밴드가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게 망 이용료를 지급하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SK브로드밴드 측은 “신용카드와 택시플랫폼처럼 인터넷 망도 고객과 콘텐츠 사업을 연결하기 때문에 양쪽에서 요금을 받는 ‘양면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CP가 ISP에게 망 이용료를 내야 할 의무가 있느냐는 점이다. 하지만 이미 국내 CP들은 통신사들에게 망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지난 2016년 기준 망 사용료 명목으로 통신사들에게 각각 734억원, 300억원 가량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발표된 과기정통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5~7월 넷플릭스의 국내 트래픽 발생량(5% 수준)은 네이버(2%)와 카카오(1.3%) 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이 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ISP가 CP에게 망 이용료를 지급하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넷플릭스의 입장이지만, 넷플릭스는 이미 프랑스 통신사 오랑주에 실질적으로 망 이용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넷플릭스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도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이 “ISP는 CP로부터 정상적 이용 대가를 수취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 지급을 거부하면서 피해가 고스란히 국내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도 중요한 쟁점이다. 네이버·카카오 등 망 이용료를 꼬박꼬박 내는 국내 기업들은 해외 사업자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지난 2018년 국정감사에서 “국내 기업들은 망 사용료 부담 때문에 고화질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데 외국 기업은 트래픽 부하를 초래하는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망 사용료도 내지 않고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통신망에 넷플릭스 같은 외국계 기업들이 무임승차하다 보니 통신사들은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국내 고객들에게 요금을 부과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3일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ISP의 망을 무상으로 이용하면 결국 (통신사들은)이용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통신 관련 제도를 교묘히 이용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간 넷플릭스의 행태에 대한 비난 여론도 관건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 유료 가입자는 330만명에 달했고, 와이즈앱에 따르면 같은 달 넷플릭스 월 결제금액은 462억원으로 역대 최대규모를 달성했다. 연간으로 따져보면 대략 5,000억원 가량의 막대한 매출을 한국 시장에서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넷플릭스는 규제 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절차를 건너뛰고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갔다. 지난해 11월 SK브로드밴드가 방통위에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갈등 중재를 신청했지만, 넷플릭스는 중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무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두 회사의 중재에서 손을 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매출만 연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방송통신사업자가 규제 당국인 방통위 중재를 거부한 것은 ‘방통위 패싱’으로 밖에 해석이 안된다”며 “넷플릭스가 수세에 몰렸다고 판단해서 국면전환용으로 갑자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태기자 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