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비어 있다./연합뉴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전국이 ‘역대급’ 전세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전세대란이 벌어지면서 전세 공급부족 수준을 보여주는 ‘전세수급지수’가 2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 전문가들은 각종 규제에다 졸속 임대차법 시행이 이 같은 결과를 불러왔다고 지적하지만 정부는 정책 실패가 아닌 저금리 탓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예견 된 전세대란...정부는 여전히>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전월(187.0)보다 4.1 상승한 191.1로 집계됐다. 2001년 8월 193.7을 기록한 후 19년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KB의 전세수급지수는 표본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집계한 공급통계로 0~200 범위 내에서 표시된다. 지수가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이 부족한 상황을 뜻한다. 앞서 2015년 전세대란 당시에도 전국의 수급지수는 170~180대를 유지했다. 한마디로 현재 전세대란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KB 통계를 보면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급 악화가 진행되고 있다. 10월 전세수급지수는 서울이 191.8을 기록한 반면 6개 광역시는 192.0으로 오히려 서울보다 수급상황이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는 197.1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급지수를 보였고 그 외에 인천(194.1), 광주(196.1), 대전(191.0), 경기(195.7), 충북(190.8) 등이 190을 넘어서는 공급부족을 나타냈다. 특히 대구와 경북·경남의 경우 통계가 시작된 후 최고치의 전세수급지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전세대란의 원인으로 각종 규제로 공급이 줄어드는 가운데 새로운 임대차법이 기름을 부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전세난을 촉발시킨 주요 요인인 임대차법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조기에 안착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 내년 입주물량 등을 고려할 때 전세난이 장기간 지속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내년 서울뿐 아니라 광주와 울산에서 아파트 입주물량이 40% 줄어든다”며 “정책과 공급 등 시장여건을 고려하면 전세난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세난에 세입자들 아파트 사자>
전세난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매물 절벽, 전셋값 급등에 지친 세입자들이 ‘내 집 마련’으로 선회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97.6을 기록하며 반등했다. 가격 급등에 따른 피로와 각종 규제로 매수자들의 관망세가 이어지며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7월부터 최근까지 하락을 이어가던 상황이다.
경기도의 매매수급지수는 같은 기간 109.5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의정부·동두천 등이 포함된 경원권의 매매수급지수는 117.3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방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0.1을 기록하며 기준선(100)을 넘겼다. 해당 수치가 100을 넘으면 매수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다. 지방 아파트 매매수급지수가 100을 넘긴 것은 2015년 12월 이후 5년여 만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최근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매매가격과의 차이를 급격히 좁혔다”며 “이에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매수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풀어서 물량 늘려야>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대한부동산학회장)는 “정부가 임대차 시장 정책의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등록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한 세제 감면 대책을 통해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 현 임대차 시장의 전세난을 타개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도 “현재의 전세난을 극복하려면 당장 입주 가능한 물량을 늘려야 한다”며 “등록임대사업자들에게 부과하는 양도소득세를 일시적으로 낮춰 물량을 매도할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정책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진행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며 “임대차 3법을 조기에 안착시키고, 질 좋은 중형 공공임대아파트를 공급하여 전세 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김흥록·권혁준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