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소부장' 국산화에 올 2,000억 쏜다

엘오티베큠 등 반도체 부품 中企
하루 4곳 741억 투자발표 이례적
7월 2곳 이어 연말까지 추가투자
R&D 지원으로 국산화 속도낼 듯


삼성전자가 올해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관련 중견·중소기업에 1,800억원을 투자했다. 정부의 소부장 국산화 드라이브에 힘을 싣는 행보다. 삼성전자의 투자를 받은 소부장 기업들은 자금 애로없이 국산화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2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국내 소부장 기업 4곳에 741억원 투자를 진행했다. 반도체 세라믹 부품을 만드는 미코(059090)세라믹스에 216억원, 반도체 장비가 주력인 뉴파워프라즈마(144960)에 127억원, 반도체용 건식진공펌프를 만드는 엘오티베큠(083310)에 189억원, 반도체전공정 장비 생산업체인 케이씨텍(281820)에 207억원 등 4개 반도체 소부장 기업에 741억원을 동시에 투자했다. 삼성전자가 하루에 4개 중소기업에 동시에 투자한 것은 이례적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하루에만 소부장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것은 과거 삼성전자의 파격 행보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소부장 국산화 정책에 맞춰 삼성전자가 기업의 연구개발(R&D) 자금 지원의 ‘백기사’로 적극 나서겠다는 것을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 7월엔 소부장 기업인 에스앤에스텍과 와이아이케이에 각각 659억원, 473억원의 규모 투자했다. 에스앤에스텍은 반도체 노광공정 핵심 소재인 블랭크마스크 개발 업체이고, 와이아이케이는 반도체 검사장비 제조업체로 국내 핵심 소부장 기업으로 꼽힌다. 올 한해 국내 소부장 기업에 삼성전자가 투자한 금액은 1,874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연말까지 소부장 2~3곳에 추가 투자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올해 삼성전자가 소부장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2,000억원이 훌쩍 넘을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위해 자금력을 앞세워 한국의 중소기업 인수에 호시탐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자금을 지원해 우군 역할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거대 자본이 한국의 소부장 기업으로 몰릴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 삼성이 소부장 중기의 R&D 지원을 위한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삼성전자가 투자한 소부장 기업들은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엘오티베큠이 개발하는 디스플레이·반도체 공정장비용 초고진공 터보분자펌프의 경우 일본 기업으로부터 수입하는 비중이 70% 이상 차지한다. 이 회사는 올해 터보분자펌프 신규 국책과제에 선정돼 펌프 국산화 개발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190억원 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연구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에 210억원 투자를 받은 미코세라믹스가 개발하는 반도체 장비용 세라믹 히터는 한 일본회사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연마공정 제조 기업 케이씨텍 역시 일본 에바라 등 미국, 일본 기업이 대부분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 관련 핵심 소부장 기업들이 중국 자본에 넘어가면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산업도 곧바로 따라 잡힐 수 있는데 삼성전자가 마중물을 통해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빈소에서 20분간 비공개로 만난 것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과거에도 주요 기술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끌어올린 사례가 있다. 2017년 동진쎄미켐, 솔브레인(357780) 등에 투자를 했는데 동진쎄미켐은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인 포토레지스트 국산화에 성공했다. 또 일본이 마지막까지 수출 규제를 했던 불화수소 역시 솔브레인이 국산화에 성공하는 결과를 낳았다.

박기호 소재부품장비투자협의회 회장은 “정부의 소부장 육성 정책과 별개로 민간 차원서 이뤄진 협력모델로 소부장 투자 생태계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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