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당헌 개정을 통한 내년 재보궐선거 후보 공천’에 당원 86%가 찬성한다는 전당원 투표 결과를 받아들고 선거 준비에 착수한다.
민주당은 2일 ‘당헌 개정을 통한 재보궐 선거 후보 공천’ 여부를 묻는 전당원 투표를 시행한 결과 당원의 86.64%가 찬성하고 13.36%가 반대했다고 밝혔다. 투표율은 26.35%다. 민주당은 지난달 31일부터 이틀 간 진행된 전당원 투표에서 “향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완수와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2021년 재보선 승리는 매우 중요하다”는 문구를 넣어 당원들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유도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투표 결과를 브리핑하며 “86%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은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는 전당원 의지의 표출”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민주당이 당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어서 더욱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2020 더혁신위원회’을 출범시켰다. 김종민 혁신위원장은 출범 당시 기자회견에서 “포스트 코로나 전환기 사회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국정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갈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혁신위를 띄운 당이 2주 만에 약속을 파기하는 땅이 어떻게 혁신을 논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당헌이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근간을 마음대로 흔드는 것”이라면서 “명분도 없고 실리만 취하는 선거 지상주의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역시 “왜 이렇게 명분 보다는 탐욕스러워지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주당이 전당원투표를 명분으로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야권은 “대의민주주의 체제하의 공당으로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국민의당·정의당 등 야권은 일제히 민주당의 결정에 대해 “책임 없는 정치”라고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특히 민주당이 불과 5년 전 책임정치를 하겠다고 만든 당헌을 스스로 번복했다며 비판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정직성을 상실한 정당”이라고 말했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재임 당시 만든 조항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는 지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오늘로써 민주당은 대의민주주의 체제하의 공당으로서 사망 선고를 받는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당헌을 바꾸는 데 당원투표를 명분으로 내세운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안 대표는 “중국집 사장님들 모셔놓고 중식과 일식 중 뭐가 낫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라며 “범죄자가 셀프 재판해서 스스로 무죄를 선고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역시 당 대표단회의에서 “민주당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비상식적 꼼수이니 ‘당원들의 폭넓은 선택권’이라는 구차한 변명 뒤에 숨은 것 아니냐”며 “필요할 때는 혁신의 방편으로 사용했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모습은 분명 민주당 역사의 오명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 및 당헌 개정 여부를 결정하는 전당원투표 용지./연합뉴스
26%라는 투표율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현행 당규는 ‘전당원 투표는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총수 과반수의 찬성으로 확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같은 정족수에 미달했다는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투표 성립요건인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효”라고 주장하자 민주당은 “당의 지도부가 직권으로 실시한 투표로서 의견을 묻고자 하는 투표”라고 반박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이 성범죄 의혹으로 사퇴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후보를 공천하는 것 자체가 ‘젠더 감수성의 부족’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여성들이 계속 성폭력 위험 속에 놓여도 정권만 재창출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냐”며 “민주당의 행태는 미투 운동이 만든 성평등 사회를 앞장서서 가로막는 꼴”이라고 성토했다.
이 같은 야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날 전당원 투표 결과를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하고 당무위원회 부의 안건으로 처리했다. 민주당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현행 당헌 규정에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덧붙일 계획이다. 이어 3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당헌 개정을 완료한 후 공직후보자검증위원회와 선거기획단을 구성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들어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2021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박수 속에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5년 전 새정연 시절 개정한 당헌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비판에 대해 민주당은 “오히려 기존 당헌이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 헌법적 권한을 막은 과잉금지”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민주당이 명분에 얽매여 스스로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천 여부는 당원들의 총의를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당 지도부가 정무적으로 결단하는 영역으로 남겨놓아야 했는데 (현재 당헌은) 이를 원천적으로 막아놓은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문재인 당시 대표는 5년 전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소속의 하학렬 고성군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받아 재보궐선거가 치러지자 “재선거의 원인 제공자는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며 당시 여당을 압박했다.
신 의원은 개정 절차를 밟는 당헌을 두고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고쳐야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비판의 화살을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 돌렸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통령 조기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출마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투표 결과로 중도사퇴하고 치러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경원 후보가 출마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의만 따졌다면 당시 홍준표·나경원 후보는 출마하지 말았어야 하지만 정치의 속성상 그런 선택을 하기 어려웠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인엽·김혜린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