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전략산업분석팀장
4년 전처럼 올해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단 조 바이든이 미국의 46대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따라서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한국 반도체와 테크 산업에는 과연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이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바이든은 36년간 상원에서 외교위와 법사위에 소속돼 있었다. 외교·국방 분야에서는 정통전문가라는 얘기다. 따라서 통상환경 측면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그 개선의 정도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급부상에 위협을 느낀 미국이 국가안보를 내세워 국제법보다 국내법을 우선 적용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바이든이 당선되더라도 체제가 복원된다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대통령으로서 바이든의 책임과 위상은 한참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경우 WTO를 대신할 새로운 다자체제를 모색할 가능성은 크다.
미국은 중국이 체제 변화 없이 경제만 성장하면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코로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기존의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을 재구축하려는 노력을 계속 강화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은 동맹 체제를 강화하면서 중국을 압박해 가는 훨씬 전략적이고 정교한 외교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던 한국 정부는 모든 통상관계에서 미국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존 중국 중심으로 구성된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의 해체와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강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 반도체·테크 섹터로서는 시장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이 수혜를 입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빅테크 기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가 실리콘밸리로부터 지지를 받는 인물이고, 혁신정책위원에 아마존·구글·애플 등 빅테크 출신 인사가 8명 이상 포함돼 있으며, 트럼프도 테크 기업들에 그다지 우호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바이든 체제가 더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증세’ 공약은 부담스러운 변수다. 바이든은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39.6%로 복원하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하고 있다. 증세는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을 줄여 TV·가전· 스마트폰 시장 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환경문제가 통상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도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잠재적 부담이다. 종합적으로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견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경제적 예측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 반도체·테크 섹터 입장에서는 중립 이상의 긍정적 변수가 우세한 것으로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