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 제공
“내 자신이 도전하는 사람인지 몰랐는데,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사기꾼 집단의 운전사, 군인, 임산부까지. 아이돌 출신 배우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에프엑스 멤버 크리스탈이자 배우 정수정이 매 작품마다 조금은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져가고 있다. 첫 스크린 데뷔작 ‘애배규환’의 캐릭터는 임산부다. 출산은커녕 결혼 경험도 없는 그에게 임산부 역은 적잖은 부담처럼 느껴질 법 했으나 정작 본인은 즐기고 있었다.
5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수정은 ‘애비규환’을 두고 “데뷔작으로는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첫 영화이긴 하지만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어요. 연기를 계속 해왔고,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임했거든요. 물론 임산부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는 처음에는 놀랐어요. 부담도 됐고요. 하지만 촬영하면서는 오히려 걱정이 안됐어요.”
정수정은 영화에서 누구에게도 쉽게 주눅들지 않고 무엇이든 알아서 척척 해내는 똑 부러진 스물 두 살 대학생 김토일을 연기했다. 토일은 연하 남친 ‘호훈’과의 불꽃같은 사랑으로 임신을 하게 된다. 정수정은 그런 인물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토일이는 요즘 여성을 대변하는 느낌이 들어서 매력적이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도 토일이 같은 성격을 지녔던 적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제일 당당하고, 똑똑하고, 잘났고. 어렸을 때 한 번쯤은 겪어봤을 거예요. 영화에서도 토일이가 실수를 통해 성장하잖아요. 그런 점들이 저랑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사진=리틀빅픽처스
5개월 차 임산부를 표현하기 위해 만삭 모형을 허리에 차고 연기를 해야 했고, 하루에 3~4끼를 먹으며 체중을 증량하기도 했다. 정수정은 임산부의 고충을 간접경험 했다고 털어놨다.
“특수 분장을 하니까 진짜 임산부가 된 것 같았어요. 행동이 자연스럽게 임산부처럼 나오더라고요. 다리를 꼬고, 그냥 앉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게 되고, 허리에 손을 얹게 되더라고요. 감독님과 처음 만났을 때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감독님이 살을 찌우라고 하셨어요. 원래 하루에 두 끼를 먹는데 세네끼를 먹으면서 살을 찌웠어요. 밥 먹고 디저트, 밥 먹고 디저트를 반복했죠.(웃음)”
임산부를 표현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영화에서 처음으로 하는 키스신 또한 쉽지 않았다. 어려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기도 했다고.
“영화에서는 많이 편집된 거예요. 실제로는 진짜 오래 찍었었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님께 ‘이렇게 오래 시키고 왜 다 잘랐냐’고 말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때 멘탈이 털렸던 것 같아요. 상체 클로즈업 샷이었는데, 하체는 쭈그리고 있었어야 해서 너무 불편했어요. 되게 덥기도 했고, 상대 배우(신재휘)와 아직 친해지지 않았을 때 찍어서 기억에 남네요.”
2009년 걸그룹 에프엑스로 데뷔한 정수정은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드라마 ‘하백의 신부’, ‘플레이어’ 등 연기자 활동을 병행해왔다. 특이한 점은 아이돌 출신 배우가 보통 맡는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사기꾼 집단 멤버, 군인 등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일부러 남들과는 다른 캐릭터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본능적으로 끌렸던 작품이고, 캐릭터였어요. ‘왜 내가 군인, 임산부 역할을 했지?’ 생각을 해보면 내 자신이 새로운 걸 원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안 질리고,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거든요. 연기의 매력은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볼 수 있는 거예요. ‘써치’에서는 군인 역할인데, 제가 언제 여군이 돼 보겠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살아가는 매력이 커요. 연기했을 때 나오는 내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신기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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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 데뷔해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는 늘 대중의 평가와 잣대가 뒤따른다. 다소 시크하고, 차가운 이미지 탓에 대중은 정수정을 ‘냉미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을 향한 평가나 대중적 이미지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정신건강을 위해 인터넷 댓글을 잘 안 봐요. 주위 사람들이 모니터를 해주는데, 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잘 안 해주잖아요. 그냥 스스로 제 연기를 보고 보완해나가려고 노력해요. 평가들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진 않아요. ‘냉미녀’라고 불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 또한 제 모습인 걸요. 일부러 그 이미지를 없애고 싶지는 않아요. 실제 그런 성격도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대중 분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냉’은 아니에요.(웃음)”
아이돌 출신이지만 그 흔한 ‘연기력 논란’ 없이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연기를 하고 있는 정수정이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연기지만,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항상 어렵다. 감정을 표현해내야 하고 카메라를 통해 보여야 하잖아요.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화면에서는 그만큼 안 느껴지더라고요. 어느 선까지 표출을 해야 하는지 이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에도 현장은 늘 즐거워요. 매 작품마다 현장이 좋았거든요. 현장이 편하면 연기할 때도 재미있고, 또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같이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그런 것에서 재미를 느껴요.”
배우 활동에 열중하느라 가수로서의 정수정의 모습을 보여준 지는 꽤 오래됐다. 그의 가수 활동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다고 하자 “늘 열려있다”며 가수 활동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항상 열려있어요. 연기도 갑자기 안 하려고 했다가 한 게 아니고, 하려고 했다가 못 한 것도 아니에요. 가수를 했었고 그것도 저의 일부분이에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크리스탈을 좋아해주는 팬들도 있어서 굳이 버리려고 하지는 않아요. 저도 가수의 제 모습을 좋아하거든요.”
오랫동안 몸 담았던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이적하고, ‘애비규환’을 통해 첫 스크린 데뷔를 알리며 배우로서의 제2의 도약을 알렸다.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게 됐다”는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목표나 꿈을 물어보면 항상 대답을 못해요. 정해놓지 않았거든요. 항상 그때 그때 열심히 하려고 하고, 내 앞에 주어진 것을 잘해내려고 해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살아왔어요. 내가 좋은 작품을 계속하고 그게 쌓이면 믿음직스러운 사람, 배우, 가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의외로 안 해본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인데,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어요.”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