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홍남기, 사표 썼던 진짜 이유는? [뒷북경제]

'결정적 한 방' 대주주 요건 완화
정부 “이미 2년 전 법에 반영했는데…소신 차원 넘었다”
당으로 넘어간 경제 정책 주도권
대학등록금 반환·재정준칙·4차 추경 통신비 지원까지
세종관가 "정치권이 체리피킹, 왜 공무원됐나 싶어"


지난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첫 질의가 시작된 순간 작심한 듯 사표 제출 사실을 밝히자 회의장엔 일순 정적이 흘렀습니다. 첫 질의자로 나서 대주주 요건 논의 결과를 물으며 ‘10억 원 유지’ 답변을 끌어낸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직서’라는 말이 홍 부총리 입에서 나오는 순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랍고도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신임으로 사의는 즉시 반려됐지만, 사표 파동에 따른 여진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홍 부총리의 공개적 사의 표명에는 그간 재난지원금과 추가경정예산안 등 굵직굵직한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짓눌려온 관료사회의 항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대주주 요건 완화는 홍 부총리가 그간 꾹 눌러왔던 불만을 표출하게 된 결정적 ‘한 방’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정부 “이미 2년 전 법에 반영했는데…소신 차원 넘었다”

정부 입장에서 대주주 요건 완화는 이미 2년 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찍이 매듭지어진 사안입니다. 지난 2017년 세법 개정안에 포함됐던 내용으로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 시행령에 반영된 계획인 만큼 긴급재난지원금, 대학등록금 반환 등을 둘러싼 논의와는 결이 다른 문제라는 인식이 녹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신의 차원을 넘어 이미 국회와의 과정을 거쳐 법률 체계를 통해 규정된 사안이라는 것이지요. 사의를 표명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 지나가기에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힌 홍 부총리의 발언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됩니다.

홍 부총리는 실제로 “2년 전 당정 협의를 거친 정부 방침을 바꾸는 것은 정책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발언을 지난 두 달 간 지속해 강조해왔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함께 논의해 이미 집행한 정책 결정을 뒤집어 일관성을 저버린다면 시장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안도 언제든 이해관계자 목소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입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부터 전 국민 통신비 지원까지

현재 경제 정책 주도권은 사실상 민주당으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홍 부총리는 앞서 긴급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대학 등록금 반환, 재정 준칙 도입 등의 과정에서도 당과 수차례 충돌한 바 있습니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두고 여당과 맞섰으나 결국 기존 정부 안인 50%에서 여당 요구대로 70%로 확대했다 또다시 전 국민 지급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게 대표적이다. 당시 홍 부총리는 총리 공관에서 진행된 비공개 당정청 회의에서 일괄 지급을 주장하는 당과 청와대의 압박에 “기록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밖에도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2차 추경 규모를 대규모 증액하는 것은 어렵다는 홍 부총리의 의견을 전달받고 홍 부총리 해임까지 언급했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홍 부총리는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의 추경안은 재정 뒷받침 여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후 제출한 것”이라며 “지금은 우리 모두 뜨거운 가슴뿐만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필요한 때”라는 글을 남겼는데요. 관가에서는 이 같은 발언이 이 대표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는 2023년 도입되는 주식 양도소득세 공제 한도를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상향한 것도 ‘동학 개미’를 의식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였습니다. 이달 초 기재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은 여당의 압박으로 늦어졌고 국회 통과도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4차 추경을 통해 지급한 2차 긴급재난지원금도 재정 문제를 이유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수차례 선을 그었으나 정치권의 요구에 결국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 났습니다. 특히 전 국민 통신비 지원은 순전히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었습니다.


◇“체리피킹만 하는 정치권…내가 왜 공무원 됐나” 세종 관가 무기력증

이처럼 정치권의 개입이 잦아지다 보니 관료 사회는 무기력증에 빠진 분위기입니다. 이달 초 세종시 관가는 최근 뇌경색으로 쓰러진 기획재정부 예산실 사무관 소식으로 술렁거렸습니다. 불과 2년 전에도 예산실 서기관이 예산안 심의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에서 대기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59년 만에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며 살인적 업무 강도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세종 관가. 최근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경제부처 관료는 “힘든 업무강도는 그나마 버티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의 압박은 ‘내가 왜 공무원이 됐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또 다른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당에 정책 같은 걸 가져가면 빨간 펜으로 쓱쓱 그어서 막 빼라고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정작 알맹이는 사라질 때가 많고, 또 좋은 건 (국회가) 발표해버리는 식”이라며 “이제는 청와대도 한발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당이 재정·부동산·금융세제·내수 활성화 등 여론에 민감한 정책을 체리 피킹(좋은 것만 골라내는 행위)하고 결과에 따른 비판과 책임은 관료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거에 비해 여의도(정치권)의 힘이 커지고 행정부는 세종시로 옮겨가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며 “우선은 관료사회에 대한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공무원들에게 국회에 가서 보고하라고 요구하는 것부터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세종=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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