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세난에 법 사각지대…문 닫는 가정어린이집

비주거용으로 임대차법 보호 못받아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적용 안돼
잇단 임대료 인상·재계약 불가 통보
규제 부작용으로 줄 폐원 위기놓여
"보육대란으로 이어진다" 우려도

전세난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서울의 아파트 전세 공급 부족 수준을 보여주는 지수가 한국감정원 조사에서 역대 최고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

“집주인이 갑자기 월세를 10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5%까지만 올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가정어린이집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5% 상한 적용이 안 된다고 하네요. 계약갱신청구권도 쓸 수 없답니다. 코로나 19로 어려운데 개원 2년 만에 폐원해야 하나 고민 입니다.”(수도권 한 신도시의 가정어린이집 원장 A씨)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 부작용으로 애꿎은 가정어린이집들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 아파트 1층에 주로 자리 잡고 있는 데 전세가가 크게 뛴 데다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 양쪽 모두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서다. 전체 어린이집의 45%를 차지하는 가정어린이집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면서 부동산 규제로 인한 보육 대란 우려까지 나온다.

◇ 줄 폐원 위기 놓인 가정어린이집 = 8일 보육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폐원을 검토하는 가정어린이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단지 1층에서 운영하던 한 가정어린이집은 학부모들에게 “경영상 이유로 2개월 뒤 폐원하게 됐다”고 알린 뒤 문을 닫았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대폭 올리면서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변에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한 학부모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가정어린이집 원장들이 모인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사연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신축 단지 내 가정어린이집도 집주인이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하면서 폐원이 결정됐다. 수도권 한 신도시에서 가정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 B 씨는 “보증금 2억원에 4년 계약을 맺었는데, 2년이 지난 시점에 보증금 7,000만원을 올려 달라고 한다”며 “그렇게까지 올려줄 돈은 없고, 그렇다고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하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다주택자 규제로 보유세 부담이 커진 집주인들이 가정어린이집에 세를 내준 집을 매도하겠다며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사각지대’…규제 역효과 직격탄 = 가정어린이집은 주택임대차법 보호를 받지 못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주택임대차법은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만 해당 되기 때문에 가정어린이집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가정어린이집은 주거용으로 활용할 수 없다 보니 주택임대차보호법 대상이 되지 못하고, 일부 사업자등록을 한 경우를 제외하면 상가임대차보호법을 통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정어린이집은 2019년 통계 기준 1만 7,117개로 전체 어린이집(3만 7,371곳)의 45.8%를 차지한다. 보육 아동 수(27만 3,399명) 기준으로는 전체 165만 5,085명 중 20%에 달한다. 특히 0~1세 아동의 보육 비중이 높아 가정어린이집의 존폐 문제는 곧 보육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정어린이집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문제는 인지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응은 없는 상태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각지대에 놓여 일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폐원이 늘어나는 것은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영유아 감소 현상 탓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법도종합법률사무소의 엄정숙 부동산전문변호사는 “임대차보호법은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 보호를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만큼 공익적 성격이 강한 가정어린이집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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