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당선 축하 행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쪽 주먹을 쥐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선거인단 20명이 걸린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면서 당선을 확정한 7일 밤(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체이스센터는 그의 승리연설을 듣기 위해 차를 몰고 나온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조, 사랑해요!”를 외치며 미국 국기를 연신 흔들어댔다.
예상시간보다 30분가량 늦은 오후8시40분께 모습을 드러낸 바이든 당선인은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연단까지 뛰어 나왔다. 자신을 소개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과 주먹인사를 한 그는 ‘졸린 조(Sleepy Joe)’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힘찬 목소리로 연설을 해나갔다.
이날 연설은 △미국의 통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미국의 정신 및 글로벌 리더십 회복에 방점이 찍혔다. “역사상 가장 많은 7,400만표를 받았다”고 운을 뗀 그는 “나라를 분열시키는 게 아니라 통합할 것을 약속한다. 공화당과 민주당 주가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을 치유해야 할 때”라며 “저는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위해 투표하지 않은 분들께도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바이든이 당선 확정 이후 가진 첫 연설에 담긴 뜻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전 세계를 이끌어온 미국으로의 회귀 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 비정상이었던 부분들이 정상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선언이라는 의미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보였던 민주적 규범·절차의 무시, 권위주의적 통치, 인종주의와 분열·대립 조장이라는 정치·사회 이념 기조에서 벗어나 보편적 민주주의 가치를 회복하고 청교도적 자유 인권 가치와 법치주의의 존중, 갈등이 아닌 통합의 화법이 골격을 이루는 미국의 전통 패러다임으로 다시 정상화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연설에서 가혹한 수사를 통해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일을 끝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연설 중 민주당과 공화당, 진보와 중도 및 보수, 도심과 교외 지역, 성소수자, 백인과 아시안·히스패닉·흑인을 일일이 언급하면서 모두를 아우르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다지기도 했다.
이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극심한 분열과 대립 때문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에서 패배했으며 그에게 승리를 안겨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서의 표 차이도 크지 않다. 상원은 공화당에 다수당을 내줄 가능성이 높고 하원은 민주당의 의석수가 되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두고 무더기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발도 계속돼 분열된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대응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하루 평균 신규 코로나19 환자가 13만명에 육박하고 지역별로 일부 록다운(폐쇄조치)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지 못하면 보건뿐 아니라 반등세를 보이던 경제까지 잃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실정을 공격해왔던 바이든 당선인 입장에서는 초반부터 이전 정부와 다른 부분을 보여줘야만 하는 부담감도 적지 않다. 이날 바이든 당선인은 “과학자들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요직에 임명할 것”이라며 “오는 2021년 1월20일(취임일)부터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을 억제하는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NN은 “바이든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기간부터 코로나19에 집중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도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당선인은 “전 세계가 미국을 지켜보고 있는 지금, 저는 미국이 전 세계의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미국은 언제나 선과 악의 투쟁 속에서 발전해왔다. 이제는 미국의 희망, 그리고 선이 다시 한 번 승리할 때”라고 밝혔다. 그동안의 트럼프 정부 정책을 사실상 180도 바꿔놓겠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다”며 “우리는 절망을 접고 미국의 목표의식을 회복하고 다시 번영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미국은 가능성의 나라라며 인종과 민족·종교·정체성에 관계없이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이민정책과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시사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