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가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처했다. 지난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했는데 최근 들어 △법정 최고금리 인하 △수수료 추가 인하 △1만원 이하 결제 수수료 면제 △페이의 공습 등 사방에서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8개 전업 카드사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1,18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8.9% 늘었다. 3·4분기까지 실적이 나온 신한·삼성·KB국민·우리·하나카드의 누적 당기순이익도 1조2,975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9% 증가했다. 하지만 수익을 많이 냈다기보다는 마케팅 비용을 줄인 ‘불황형 흑자’였다. 상반기 총수익은 12조4,80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56억원(0.5%)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비용이 11조3,624억원으로 1,120억원(1.0%)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드사를 옥죄는 정책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대표적이다. 당정뿐 아니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도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낮추는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국 압박으로 수수료를 낮춘 후 새 수익원으로 카드론에 의존했는데 이제는 최고금리까지 낮추라 한다”며 “실적에 타격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상반기 카드론 수익은 지난해보다 1,243억원 늘며 전체 순익을 견인했다. 업계에서 수수료 인하로 카드를 연 1억원 이상씩 많이 긁는 사람이 아닌, 카드론 이용자가 카드사 ‘VIP고객’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카드론의 실적 악화는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가맹점 수수료는 또 내려야 할 분위기다. 지난 2012년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정부는 3년마다 수수료를 조정한다. 다음 시기는 오는 2022년 초로 내년부터 관련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수수료율은 카드사의 △자금조달비용 △위험관리비용 △일반관리비용 △밴수수료 △마케팅비용 등 원가(적격비용)를 검토해 정해진다. 카드사들이 허리띠를 졸라 비용을 줄인 것이 역설적이게도 수수료를 또 낮추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무적 관점에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점도 수수료 추가 인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영세 신용카드 가맹점은 1만원 이하 소액카드 결제 수수료를 면제해주자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까지 야당(구자근 국민의힘)에서 발의됐다. 여기에 카카오페이에 이어 네이버페이까지 오프라인 결제 시장 진출을 선언한 점 역시 구조적으로 카드사의 먹거리를 줄이는 사안이다. 가령 편의점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써야 신용카드사의 매출이 늘어나는데 각종 페이로 결제하는 사례가 확산하면 단순히 수수료 문제가 아니라 먹거리 자체를 잃을 수밖에 없다.
코너에 몰린 카드사들은 돌파구 마련에 분주하다. 삼성카드는 올 들어 SC제일은행·새마을금고와 고금리 적금을 선보인 데 이어 이날 하나은행과 최대 연 12% 금리를 주는 ‘하나 일리 있는 적금’을 출시했다. 삼성카드 신규·휴면 고객(선착순 5만명)을 대상으로 그동안 삼성카드를 잘 이용하지 않았던 고객을 겨냥했다. ‘삼성아멕스블루카드’를 매달 1만원 이상 쓰거나 3개월 이상 누적 사용금액이 30만원을 넘으면 최대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대카드도 우리은행·신협중앙회·Sh수협은행과 카드이용실적과 연동해 최대 연 5.7~6.4% 금리를 주는 제휴 적금을 선보였고 신한카드 역시 SBI저축은행·애큐온저축은행 등 업계 상위권 저축은행과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은행 고객층은 카드와는 달라 교차판매를 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카드사의 순익이 흔들릴 수 있어 소비자 혜택은 계속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소비자 혜택 등이 포함된 카드사 마케팅비용 증감률은 2018년 10.3%였지만 수수료가 인하된 2019년 6.6%로 급감한 후 올해 1·4분기에는 4.2%로 쪼그라들었다. 최고금리 인하로 카드사가 중·신용자 대출을 외면해 불법사금융으로 몰리는 사람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지면 57만3,000여명이 불법사금융 시장에 내몰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태규·빈난새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