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천 서강대 교수, 국제정치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조 바이든은 40여년의 긴 정치경력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큰 정치인은 아니다. 부통령과 상원외교위원장 등 중책을 역임했지만 특히 떠오르는 브랜드가 없는 무색무취의 정치인이다. ‘팬덤’도 강력한 비토 세력도 없다. 그래서인지 경선 초반에는 강력한 팬덤을 확보한 버니 샌더스와 ‘엄친아’인 신예 피터 부티지지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반드시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토층이 엷고 확장성이 강점인 바이든이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바이든 대세론이 확산됐다. 역설적으로 바이든은 특별함이 없었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로 옹립됐고 결국 대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는 여전한 경쟁력을 보여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실패로 나라를 이렇게 망쳐놓았는데 절반에 가까운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트럼프를 향한 팬심은 전혀 식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바이든이었기에 트럼프 지지층을 조금이나마 잠식해 가까스로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었다. 이제 세계의 이목은 바이든 당선인의 행보에 쏠려 있다. 바이든은 미국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고 미국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의 정치행적과 철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은 민주당의 전형적인 중도 온건파 정치인이다. 진보 정치인이지만 다른 정파도 인정하며 끈질긴 대화를 통해 타협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실용주의 정치인이다. 지난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제안한 대규모 경기부양안은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반대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실상 의회를 ‘패싱’하며 대국민 설득에만 전념하고 있었고 이에 공화당은 그를 ‘제왕적 대통령’이라 비판하며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때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공화당 지도자들과 대화에 나서 타협안을 도출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경기부양안 통과는 바이든의 대화 노력과 협상력 때문에 가능했다.
바이든은 화려한 언변과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공감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아내와 딸은 교통사고로 장남은 뇌암으로 잃은 비극의 가족사가 그를 공감의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바이든은 미국 정치의 분열상 치유를 당면과제로 상정하며 ‘최고의 치유자(healer-in-chief)’가 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가 재임한 4년 동안 미국의 정치토양은 더 척박해졌다. 예전에는 민주·공화 양당에 중도 온건파들이 활동하며 정책의 초당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작금의 미국 정치가 극도로 양극화하면서 양당 공히 중도파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바이든은 치유와 화합을 위해 공화당뿐 아니라 샌더스로 대표되는 민주당 내 급진 세력의 협력도 견인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도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대화와 공감의 정치인인 바이든만 한 적임자도 없어 보인다.
바이든의 외교정책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자유주의 국제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 관리에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으면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비자유주의 독재국가들이 빈자리를 차지해 국제질서를 혼란에 빠뜨릴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미국외교의 시계를 트럼프 이전으로 돌려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를 추인한 트럼프 열렬 지지층 그리고 국내 문제를 먼저 돌보라는 국가 분위기는 바이든이 적극적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