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겨울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한 아파트. 다니엘 에크와 마르틴 로렌손이 ‘음악 등 미디어를 무료 스트리밍한 후 광고로 수익을 낸다’는 사업 아이템 아래 회사 이름을 정하려던 참이었다. 로렌손은 옆방에서 에크가 “스포티파이!(Spotify!)”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도메인을 검색했고, 주인이 없는 걸로 확인되자 바로 도메인을 구입했다. 정작 에크가 한 말은 그게 아니었지만, 발견한다는 뜻의 ‘spot’과 식별한다는 뜻의 ‘identify’의 조합이라고 말을 맞춰 회사 이름으로 쓰기로 했다. ‘스포티파이’의 시작이다.
그렇게 출발한 스포티파이는 현재 전 세계 가입자 3억명에 달하는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업체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부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성장한 이 회사는 드라마틱한 설득과 성공, 실패의 과정을 거쳐 2018년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됐다. 에크는 200억 크로나(약 3조원)에 달하는 돈방석에 올랐다. 한국에도 곧 진출할 거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는 스포티파이가 몰고 올 엄청난 변화에 대한 우려와 기대 속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스포티파이의 공동창업자인 다니엘 에크(오른쪽)과 마르틴 로렌손. /사진제공=비즈니스북스
신간 ‘스포티파이 플레이’는 스포티파이라는 스웨덴의 작은 스타트업이 전 세계 음악 산업을 주름잡는 스트리밍 서비스업체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스웨덴의 경제신문 ‘다겐스 인두스트리’에서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 스벤 칼슨과 요나스 레이욘휘부드가 내부자료 취재와 여러 관계자들과의 심층 인터뷰 등을 토대로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스포티파이의 성공 비결을 제시했다.
책은 ‘스트리밍이 음악 산업을 구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시장에 뛰어든 스포티파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음악 콘텐츠 산업의 성장기라고도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컴퓨터에서 원활하게 실행하는 방법 정도만 고민하던 두 사람은 회사를 키워갈수록 더 많은 고민거리와 마주하게 된다. 스트리밍의 가능성을 신뢰하지 않는 음반사와 아티스트, 정보기술(IT)업체 등이 모두 설득의 대상이었다. 책은 스포티파이가 그들을 설득하며 음원을 확보하고 소셜 미디어와 제휴해 가는 과정을 신문기사와 같은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전개해 간다.
저자들이 스포티파이의 성공 전략 가운데 첫손에 꼽는 것은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해 사용자 환경에 맞춘 음악 큐레이션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알고리즘 기반으로 사용자의 취향과 환경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생성하는 ‘디스커버 위클리’ 기능이 대표적이다. 이용자 자신보다도 더 취향을 잘 꿰뚫어서 무서울 지경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교한 추천 플레이리스트로 정평이 나 있다.
2008년 10월 스포티파이가 처음 출시됐을 때 직원들이 모여 있는 모습. /사진제공=비즈니스북스
책에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거대 IT기업들의 인수 제안을 뿌리치고 독립성을 유지한 스포티파이가 애플을 비롯한 공룡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한 기록도 들어있다. 책을 읽다보면 애플이 ‘악당’으로 보일 정도다. 저자들은 고 스티브 잡스가 스포티파이의 미국 진출을 막기 위해 유니버설뮤직에 저작권 합의를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고, 에크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스포티파이 앱을 업데이트하면 애플 앱스토어에서 승인되지 않아 이용자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에크와 그의 조력자들은 스포티파이의 성장을 위해 수시로 ‘벼랑 끝’ 협상을 벌이며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국·일본 등 13개국에 빠르게 판권이 팔렸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렇다면 스포티파이의 주장대로 음원 스트리밍 사업모델은 음악 산업을 구했을까. 책을 읽다 보면 적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뮤지션들 중 상당수가 스포티파이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디스커버 위클리’ 알고리즘은 작은 음반사의 곡을 주로 추천하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을 발굴하는 효과가 적잖이 있다. 결과적으로 스포티파이는 음악 시장의 파이를 키운 셈이다. 1만8,000원.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