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후 아스피린 끊은 환자 사망...제대로 된 투약지침 없다

혈전방지 약물 2개 복용해온 60대
수술 연기로 18일·11일간 투약중단
복용 확인 소홀...급성 심근경색 불러
지혈작용 방해 우려한 '중단 권고'
질환별 중단·재개 가이드라인 없어
중앙환자안전센터 '주의경보' 발령

/이미지투데이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앞둔 60대 남성 A씨. 외래진료 때 의사가 “수술시 출혈 위험이 있으니 아스피린(항혈소판제)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해 입원일까지 7일 동안 아스피린을 끊었다. 그런데 수술 하루 전 입원했더니 ‘수술 전 위험평가’에서 A씨가 항혈소판제인 클로피도그렐도 복용해왔고 심전도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됐다며 수술을 미뤘다. ‘수술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A씨는 내과 협진에서 “수술 후 빠른 시일 안에 항혈소판제 복용을 재개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의사는 A씨에게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을 수술 당일까지 7일간 추가로 복용 중단하도록 했고 수술 후에도 두 약물 복용중단을 이어가며 경과를 살폈다. 하지만 A씨는 수술 후 4일째 되던 날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수술 연기로 아스피린은 총 18일간, 클로피도그렐은 총 11일간 복용중단 상태였다. 기본적인 의약품 복용력 확인이 소홀했던 셈이다.


A씨는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지만 스텐트(금속 망)를 넣어줘 혈관을 넓혀주는 시술을 할 수 없어 약물치료만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중앙환자안전센터는 이런 사례가 잇따르자 ‘수술·시술 전후 항혈전제(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 투약관리 오류’와 관련한 ‘환자안전 주의경보’를 발령했다. 안전사고 예방과 재발방지를 위해서다. 특히 “가급적 질환별 항혈전제 적응증을 담당하는 내과·신경과 등 전문의와 협진하고, 수술·시술 후 출혈 위험이 안정되면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항혈전제 투약을 재개해달라”고 당부했다.

항혈전제 복용 환자에게 수술·시술을 이유로 필요 이상의 기간 동안 항혈전제 복용을 중단하면 뇌경색·심근경색 등 각종 혈전증과 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진다. 반대로 수술 전 항혈전제를 끊지 않으면 주사바늘을 찔러 척추마취(하반신 마취)를 하는 과정에서 신경 주변의 혈관손상→ 출혈이 생길 때 지혈이 잘 안돼 피가 고이고 응고돼 신경을 누르면 하반신 마비 등 허리 디스크(추간판탈출증)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A씨 같은 환자에게 수술 전 며칠동안 항혈전제 복용을 중단하고, 수술 후 얼마만에 복용을 재개하는 게 좋은 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통상적으로 1주일가량 복용을 중단했다가 수술하는 경우가 많지만 환자마다 위험도가 달라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려워서다. 그래서 대부부의 병원들은 환자의 심뇌혈관질환 중증도 등을 고려해 내과·신경과·마취과에서 약물 복용중단 기간 등을 조절한다. 아스피린 등 복용중단 기간이 길어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하기도 쉽지 않다.

인증원에 따르면 침습적 시술·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미국은 아스피린 7~10일, 클로피도그렐 5일, 와파린(항응고제) 1~8일, 저분자량 헤파린 24시간 △유럽은 클로피도그렐은 5일, 티카그렐러 3일 동안 항혈전제 복용중단을 권고하고 있다. 임영진 인증원장은 “항혈전제 중단·재개 계획을 마련할 때 질환별 항혈전제 적응증을 담당하는 진료과와 수술·시술을 시행하는 진료과 등이 협진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환자에 대한 명확한 복약 지도와 의료진 간의 정확한 인수인계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인준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신경과·내과 등에서 환자의 뇌경색·심근경색 등 위험도를 판단해 얼마동안 항혈전제 복용을 중단하는 게 좋은지 의견을 주면 그에 따른다”면서 “와파린 복용자인데 수술 전 약을 끊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먹는 약은 끊되 항혈전 주사제를 쓰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피를 묽게 하기 때문에 지혈이 잘 안 되게 만드는 항혈전제는 수술 후 48시간이 지난 뒤에 쓰는 게 비교적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서동현 부평힘찬병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피를 묽게 하는 항혈전(항혈소판) 기능이 강력하지 않은 ‘아스피린’은 보통 2~3일, 그 기능이 강한 클로피도그렐은 5~7일 복용중단 후 수술한다”며 “대신 심근경색·뇌경색 등 위험을 낮추기 위해 수술 하루 뒤쯤부터 3~4일 동안 항혈전 주사제(에녹사파린 등)를 피하주사한 뒤 먹는 약으로 바꿔준다”고 소개했다. 주사제를 쓰는 것은 수술 후 곧바로 식사하지 못하는 환자가 많고 며칠 동안은 먹는 약이 많아져 부담스럽고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서 병원장은 이어 “정맥혈관을 통해 마취제를 투여하는 전신마취를 하는 어깨 인공관절수술 등의 경우 아스피린 복용은 거의 중단하지 않고, 클로피도그렐은 2~4일만 끊는데 무릎 인공관절수술은 기계호흡에 대한 부담 때문에 대부분 척추마취(하반신 마취) 하에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항혈전제는 협심증·심근경색·뇌경색 등의 예방 및 재발방지,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혀 스텐트 시술을 하거나 심장판막수술 등을 한 뒤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된다. 혈전은 1단계로 혈관 손상 부위에 혈소판이 달라붙어 덩어리를 만드는 혈소판 응집, 2단계로 혈액응고 단백질이 ‘섬유소 망’을 형성해 단단히 뭉쳐지는 혈액응고 과정을 거쳐 생성된다. 1단계를 억제하는 약물을 항혈소판제, 2단계를 억제하는 약물을 항응고제라고 한다. 항혈소판제는 지혈을 더디게 하고, 항응고제는 출혈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수술 등을 하기 전에 미리 복용을 중단한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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