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준호 국제부 차장
미국 주류 언론의 기사를 통해 미국을 바라본 사람에게 이번 미국 대선은 ‘이변’이다.
선거 직전까지도 미국 메이저 언론들은 조 바이든 후보가 10%포인트 이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리드한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데 선거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47.4%를 득표했다. 50.8%를 얻은 바이든 당선인과 3.4%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트럼프가 얻은 약 7,230만표는 바이든 당선인을 제외하면 미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득표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을 살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했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처음부터 우습게 본 탓에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가 나온 나라로 만들었고 자신까지도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했다.
이런 대통령이 뭐가 좋길래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투표장으로 달려나갔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미국이 지켜온 가치와 대의에 실망한 미국인이 많다고 진단했다. ‘공정과 정의가 넘치는 풍요로운 자유무역 국가’라는 이상에 동의했지만 이민자와 불법체류자, 외산 덤핑제품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누적됐다는 것이다. 공업 대국이었던 아버지 세대에는 많이 배우지 못해도 공장에서 성실히 일하면 중산층까지는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월스트리트 자본에 장악당한 제조업은 다운사이징이라는 미명 아래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사람을 줄이고, 자산을 내다 팔아 장부를 개선하는 데만 바빴다. 그런데도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정권을 잡으면 월스트리트 사람을 아예 정부의 경제·재무관료로 기용하고 금융산업 이익을 강화하는 데만 열심이었다.
이런 현실에 분노한 사람들이 미국 우선주의와 백인 우월주의에 표를 주러 4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투표소로 달려나가 트럼프를 찍었다.
더 이상 미국의 정치를 보수 공화당과 리버럴 민주당의 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 이미 미국은 워싱턴DC의 기득권 정치를 지지하는 세력과 여기에 염증을 느끼는 세력의 대결 구도로 접어들었다. 앞으로도 ‘기득권 대 대안세력’의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 같은 우파 포퓰리스트는 물론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을 닮은 좌파 정치인이 계속 등장해 대안세력으로서 워싱턴 기득권에 도전할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 ‘50년 워싱턴 경력’을 자랑하는 기득권 정치인에게 대권이 돌아갔다. 그렇지만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앞으로도 트럼프가 미국 정치현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트럼프의 득표수, 그리고 대안세력을 원하는 민심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바이든 당선인 또한 47.4%에 달하는 트럼프 지지층의 요구를 못 본 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정 수준의 미국 우선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는 게 맞다.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