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으로 세입자를 내보낼 방법이 있을까요?”
정부와 여당이 지난 8월 주택 임대차법 개정을 강행하자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회원들은 머리를 맞대 임대차법을 무력화할 묘안을 모색했다. 한 회원은 “후순위 대출을 받아 3개월 연체한 뒤 경매 경고문으로 압박하라”는 제안을 했다. 세입자가 불안함을 느껴 다른 거주지로 옮길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집주인도 타격을 받는 만큼 광범위하게 활용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세대출 만기 연장 시 동의하지 않으면 된다”며 누군가가 묘수를 던졌다. 상당수 보증기관에서 전세대출보증과 관련해 주택 소유주의 동의를 얻고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회원들 간에 ‘신박하다’는 평가가 나오며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급격히 제동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SGI서울보증 등에 “임대인 동의 없이 전세대출보증 업무를 취급하라”는 지침을 전달하는가 하면 보도자료를 통해 “전세계약 갱신 시 기존 전세대출을 그대로 연장할 때는 임대인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전문가도 놀랄 정도의 집단지성, 각종 규제 무력화해=부동산 커뮤니티가 각종 규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 규제가 강한 재건축 사업에서는 이미 각종 꼼수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정부는 재건축 사업지에 신규 아파트가 조성되면 주변 집값을 자극, 부동산 시장의 불안요인이 된다고 판단해 정비사업 규제 완화에 소극적이다. 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거나 각 지방자치단체 분양가심의위원회를 통해 분양가도 옥죄고 있다. 재건축 조합은 이 점이 불만이다. 사업성을 높이고 조합 부담을 줄이려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재건축 조합의 줄다리기로 인해 사업이 지지부진한 곳이 상당수인데 일부 재건축 조합은 분양가상한제 회피방안으로 임대 후 분양제를 택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신반포 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일반분양 물량 346가구를 임대사업자에게 통째로 매각해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 경우 분양가상한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된다. 해당 방안은 부동산 카페를 통해 확산했고 일부 재건축단지에서는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그러자 정부가 부랴부랴 일반분양 물량을 기업에 통매각해 임대하는 방안은 불허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신반포 3차·경남아파트 재건축단지에서 성공했다면 부동산 정보 커뮤니티를 통해 재건축 주요 조합으로 무한 확산할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부동산대책의 풍선효과도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대책을 남발하면서 규제지역을 점차 확대해나갔다. 지난해 말 발표한 12·16대책에서는 시세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자 부동산 커뮤니티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서울 내 9억원 이하 아파트 투자 대세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들은 이른바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아파트를 집중 목표로 삼았고 6억원 안팎에 거래되던 아파트들이 불과 6개월도 안 돼 9억원에 수렴하는 ‘풍선효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20대책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펼쳐졌다. 정부가 수원 영통·권선·장안구, 안양 만안구, 의왕시를 신규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자 이번에는 화성·오산·평택으로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비규제지역인데다 교통개발 호재 등이 발생하면서 투자 눈길을 이쪽으로 돌리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들 지역은 올 초 외지인 매입이 급격하게 늘었다.
◇부동산 유튜브·카톡 통해서도 투자 꼼수·담합 확산=유튜브에서 부동산 콘텐츠는 최근 가장 잘 팔리는 상품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각종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유튜브 방송을 하는 유튜버가 적지 않다. ‘임대차 3법이 만든 기회, 갭투자 타이밍 다시 왔다’ ‘부동산 폭락해도 오를 곳은 오른다’ ‘3기 신도시보다 더 뜰 지역 있다’ 등 눈길 끄는 제목으로 시청을 유도한다.
한 유튜버는 최근 방송에서 “매매가가 5,000만원 오르는 동안 전세금이 1억원 올랐다”며 “무주택자라면 차라리 ‘갭투자’로 먼저 집을 사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또 다른 유튜버는 각종 호재를 바탕으로 경기도 용인 구성역, 광명 학온, 안산 장상지구 등을 콕 집어서 투자하라고 언급했다. 이 지역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호재와 더불어 분양물량이 1만가구 안팎으로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부는 일반적인 투자원칙을 넘어서 직접 아파트 단지명 등 매물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여서 정부의 단속 대상이다. 정부는 올 2월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을 신설해 유명 유튜버들의 공인중개사법 위반행위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카카오톡을 통해서는 ‘로또 아파트’ 청약 일정과 조건 등 알짜정보가 전파되지만 집값 짬짜미 등 부정적 영향도 나타나고 있다. 올 초 경기도 수원·용인·의왕·군포 등에서 모바일메신저를 통한 가격담합이 횡행해 정부가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동네 환경개선과 ‘맛집 탐방’ 등 취미활동을 공유한다는 명목으로 입주자 단체 채팅방을 조성해 은밀하게 가격을 담합하고 있었다. 경기도 군포에 거주하는 한 아파트 입주민은 “주민 단체 채팅방에서 직접적인 담합 제안은 없었지만 ‘매매가격이 시세보다 싸다’는 등 얘기가 오갔다”며 “은밀하게 가격에 대해 ‘리밋(하한선)’을 정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언급했다.
◇‘규제 만능주의’가 만든 서글픈 현실=전문가들은 이같이 각종 디지털 매체를 통해 부동산 정보가 생산되고 확산하는 현상이 정부의 규제만능주의가 양산한 부작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격형성을 막고 각종 규제로 허들을 세우다 보니 규제를 회피할 온갖 꼼수를 모색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생산한 정보는 카카오톡·유튜브 등을 통해 지속 확산하고 있다는 평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도입하고 세 부담을 높이자 사람들이 최소 비용을 부담할 방안을 찾게 됐다”며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집단지성으로 회피방안을 모색하고 일부는 유효하게 되자 커뮤니티·유튜브 등이 점점 더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