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혁신을 짓밟지 말라

김광수 금융부 차장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애플. 아이폰은 세밀한 부분에서부터 고객들을 감동시켰다. 아이폰은 박스를 들어 올리면 내용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를 7초로 계산해 패키지를 구성했다. 고객이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이 가장 커졌다가 희열을 느끼는 시간을 계산해 설계했다.

혁신이란 단순해 보이지만 남들이 쉽게 생각하지 않은 부분에 작은 변화를 주는 데서 시작된다. 금융권에도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간편결제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금융권에 혁신을 촉발했다. 휴대전화 속에 설치한 앱만으로 은행에 가지 않아도 계좌를 만들고 돈을 이체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월세 보증금 대출, 아파트 담보 대출도 100% 비대면으로 가능해 은행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없어도 비밀번호만 누르거나 QR코드만 찍어도 결제가 가능한 일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엄청난 변화를 시도한 것도 아니다. 고객들이 어떤 점에서 불편함을 겪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됐다. 대출을 받으려고 고객들은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사업자등록증이나 재직증명서도 준비해야 했다. 시간을 낼 수 없는 직장인은 휴가를 내는 게 흔했다. 온라인에서 결제할 때마다 카드번호, 유효기간, 비밀번호 등을 일일이 누르는 것도 번거로웠다. 카드가 없으면 결제조차 할 수 없었다.

기존의 금융권은 고객의 이런 불편함을 몰랐다. 굳이 알려 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 혁신은 우리 일상을 파고 들었다. 본격 경쟁이 시작되자 견제가 심해졌다. 인터넷은행과 간편결제 회사가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도입하면 은행과 카드사는 곧바로 미투상품을 출시했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할 때는 특혜라고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이 혁신 금융업체를 길들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중금리대출을 확대하라며 케이뱅크, 카카오뱅크는 물론 출범도 하지 않은 토스뱅크를 소집했다. 중금리대출의 비중이 낮아졌다고 혼쭐났지만 규모는 계획대로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신용대출이 늘어나 비중이 줄어든 탓도 있다. 대출이 거절된 중·저신용자는 연계 대출까지 추천해준다.

아직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이를 두고 경고, 배신이라고 하기보다 더 잘할 수 있게 응원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이미 이들이 시장에 가져온 혁신만으로도 금융권에 변화는 시작됐다. 이러다 인터넷은행에 사용자가 늘었으니 영업점을 내라고 하진 않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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