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나비와 주한독일문화원이 공동기획한 ‘뉴로-니팅 베토벤’은 베토벤 음악이 뇌파에 미친 영향을 뜨개질 기계의 직조물로 시각화 한 예술과 기술의 협력작품이다. /사진제공=아트센터나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이 울려 퍼진다.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박종화 서울대 교수다. 감상자들이 눈을 감고 곡을 음미한다. 그중 한 사람, 뇌파 값을 측정하는 EEG 헤드셋을 쓴 사람은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장인 오심 스님이다. 베토벤 음악을 들은 스님의 뇌파는 실시간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미디어아티스트 바바라 굴라예바와 마르 카넷에게 전송된다. 이들의 손에서 스님의 뇌파데이터는 뜨개질 기계로 전달돼 직물로 만들어진다. 음악에 반응한 뇌의 각 부분이 밝기와 색깔을 달리한 형형색색으로 펼쳐진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주한독일문화원과 아트센터나비가 공동 기획해 오는 27일 저녁에 선보일 퍼포먼스의 플롯이다
코로나19 시대의 관객을 위로하기 위해 구상한 작품이라는 게 기획자의 설명이지만, 이번 작품은 미술계의 생존을 위한 실험이기도 하다. 팬데믹 시대에 ‘홀로’ 버틸 수 없음을 절감한 미술계가 종교, 과학, 음악과 손잡고 ‘합종연횡’이라는 키워드를 과감하게 풀어낸 색다른 도전인 셈이다.
김창열의 ‘물방울’을 마주하며 명상을 진행하는 그림명상스튜디오. /사진제공=AIF미술경영연구소
코로나 19 위기 속에 문화예술계가 과감하고 적극적인 연대에 나서고 있다. 연초 이후 극심한 타격을 입은 문화예술계가 새로운 수요층으로 문화 소비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전방위 크로스오버에 뛰어든 것이다. 최근 백신 상용화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지만, 백신이 나와도 과거와 같은 삶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사회 전반의 중론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을 건 문화예술계의 도전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술계에서는 국내 최정상급 화랑인 국제갤러리의 변신이 주목된다. 국제갤러리는 2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K1건물 2·3층에 피트니스 공간인 ‘웰니스K(Wellness K)’를 열었다. 미술과 웰빙·운동을 접목해 그림을 일상 속으로 좀 더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국제갤러리는 한발 더 나아가 인근 80평 규모의 한옥을 개조해 약국이 접목된 전시장을 준비 중이다. 정서 순화에 기여하던 예술이 ‘건강’을 화두로 심신 치유까지 확장되는 셈이다. 일반적 약국과 다른 ‘갤러리 속 약국’은 코로나19 시대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 스미소니언과 모마 등 대형 미술관들은 작품과 함께하는 요가 수업을 진행해 호응을 얻은 바 있고, 국립현대미술관도 요가와 러닝프로그램을 미술관 행사로 기획했다.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도 미술품과 함께 명상하는 요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담동의 AIF미술경영연구소는 김창열, 이우환 등의 그림을 앞에 두고 명상하는 ‘그림명상 스튜디오’를 최근 열었다.
영화관에서 상영 된 ‘미스터 트롯 더 무비’ 스틸컷.
극장 역시 시대 전환기를 맞아 합종연횡을 생존 돌파구로 보고 있다. 먼저 음악과의 동행으로 첫 단추를 끼웠다. 아이즈원, 방탄소년단(BTS) 등 아이돌 그룹 공연을 스크린으로 옮겨와 팬들을 극장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하자 타깃 연령대를 높여 트로트 공연까지 상영관으로 끌어들였다. 지난 9월 개봉한 BTS 다큐 영화 ‘브레이크더 사일런스 : 더 무비’와 ‘그대, 고맙소 : 김호중 생애 첫 팬미팅 무비’, 10월 개봉한 ‘미스터트롯 : 더 무비’는 모두 누적 관객 10만 명 이상을 가볍게 동원했다. 일반 영화 티켓보다 더 비쌌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고무적인 결과다. 영화관들은 대중가요 외에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공연 등으로 음악 영화의 영역을 확대하는 추세다.
출판계와 손 잡은 북토크도 극장에서 진행된다. 출판계 입장에서도 방역 여건이 좋은 영화관은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북토크 장소로 손색이 없다. CJ CGV는 지난 13일 신간 ‘영화 하는 여자들’의 출간 기념 북토크를 연 데 이어 오는 27일에는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시 낭독회도 진행한다. 김승일 시인과 주영헌 시인이 직접 찾아와 시를 낭독할 예정이다.
세종문화회관이 오는 27~28일 선보이는 게임×클래식 접목 공연 ‘LoL 라이브 : 디 오케스트라’/사진=세종문화회관
공연계에서는 오는 27~28일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의 기획 공연 ‘LoL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가 색다른 장르 결합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세계적인 인기 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와 KBS교향악단의 합동 무대로, LoL의 세계관을 표현한 대표곡을 화려한 게임 속 영상과 함께 선보이는 보기 드문 콘서트다. 그동안 영화나 뮤지컬 장면을 상영·시연하며 오케스트라가 주요 삽입곡을 연주하는 식의 공연은 제법 있었지만 게임을 클래식 공연과 접목한 사례는 흔치 않았다. 색다른 무대에 게임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세종문화회관이 대극장 3층 시야 제한석을 제외하고 수용 인원의 80% 수준으로 오픈한 티켓은 거의 매진됐다.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자 메가박스도 전국 40여 개 상영관(8,000석 규모)에서 이 공연을 온라인으로 유료 생중계하기로 했다. 이 기획 역시 공연 시장의 새 관객 발굴 및 확대와 맞닿아 있다. 게임 분야는 콘텐츠 충성도가 높은 고객층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데다 아이템 구매를 비롯한 관련 소비에도 적극적인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LoL의 경우 전 세계 이용자 수가 월 1억 명에 달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방탄소년단(BTS)이 게임 속으로 들어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넷마블이 지난 9월 BTS의 지식재산(IP)을 기반으로 세계 173개국에 선보인 스토리 소셜 모바일 게임 ‘BTS 유니버스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에서는 의상·액세서리 등을 모아 BTS 캐릭터를 꾸미고 증강현실(AR)을 이용해 촬영도 할 수 있다. BTS는 지난 9월 디지털 싱글 ‘Dynamite’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게임 ‘포트나이트’를 통해 가장 먼저 선보이기도 했다.
오정화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 팀장은 “기존 공연 시장은 한정된 소비자의 반복 관람이 주를 이루다 보니 새 관객층의 유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게임 장르는 충성 고객이 확보된 매우 큰 규모의 시장이라는 점, 게임 음악이 다양한 장르를 기반으로 해 공연 예술과의 접목 효과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관객 확대의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조상인·송주희·박준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