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균
지난 10월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은 세계에서 제일 큰 이동식 발사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새로운 모양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선보였다. 지난해 말 ‘머지않아 세계는 신형 전략무기의 출현을 보게 될 것’이라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호언장담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로써 2018년 소위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에서 비롯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세기적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일련의 ‘평화쇼’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핵과 미사일을 틀어쥐고 나가겠다는 김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만 재차 확인됐다. 북핵 문제는 돌고 돌아 원점보다 더 뒤로 퇴보한 셈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전 세계 초미의 관심사이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백악관의 새 주인이 결정된 것을 계기로 한미 양국은 대북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첫번째 과제는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결단을 압박하기 위한 국제적인 대북 제재 레짐(regime)을 복원하는 것이다. 2017년 말을 기준으로 국제사회는 유엔안보리 제재와 독자 제재를 통해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 제재망을 완성했다. 북한으로 하여금 생존과 핵무기 중 양자택일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확고한 국제사회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2018년 북한의 평화공세와 한국의 평화지상주의,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리얼리티쇼 정상회담 추진으로 대북 제재 레짐은 효과를 발휘하기도 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중·러는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허술한 제재를 틈탄 북한의 불법 외화벌이는 날로 도를 넘고 있다. 과거 행태에 비추어 북한은 미국의 새 행정부가 진용을 갖추기도 전에 도발을 통해 흔들어 놓고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시작하는 낡은 수법을 쓸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절대 스스로 핵을 포기할 리 없는 상황에서 제재는 거의 유일한 대북 지렛대(레버리지)다. 북한과의 협상에 앞서 반드시 대북 제재망을 복원하고 더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핵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실효성 있게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북한이 뉴욕·워싱턴을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ICBM 능력을 발전시킬수록 과연 미국이 북한에 맞서 한국을 지켜줄 것인지 의구심은 커져갈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신뢰성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식 핵 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에 우리를 참여시킨다든가, 핵공격가능(dual-capable) 공중·해상전력 배치, 저위력전술핵무기·크루즈미사일의 한반도 인근 배치 등 다양한 방안을 한미가 함께 진지하게 들여다볼 때가 됐다. 미국을 믿지 못하게 되면 독자적인 핵무장론이 그 공백을 파고들 것이다.
끝으로 한미 간 갈등요소를 해소하고 빈틈없는 대북공조 체제를 수립해 동맹의 체력을 튼튼히 해야 한다. 동맹의 근간인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을 담보하기 위해 합리적인 수준의 다년간 방위비분담금협정(SMA)을 조기에 체결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과 한미연합작전 수행을 위한 한국군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며 기한을 정해 놓고 성급하게 추진할 일이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포대를 추가 배치하고 패트리엇 미사일과의 연동을 통해 미사일방어망을 확충해야 한다. 빈사 상태에 있는 한미일 안보협력은 대북 공조는 물론 유사시 미군과 유엔군의 병력·물자 지원을 위한 유엔사 후방기지 사용을 감안해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신세가 될 것이다. 지금은 구두끈을 동여매고 미국과 함께 다시 한번 결연하게 맞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