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제공
스포츠 선수와 예능 프로그램의 만남이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과거 스포츠 선수들이 예능 프로의 감초 역할을 하는 게스트로 출연했다면, 현재는 한 프로그램의 고정 멤버이자 진행자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특히 최근 방영 중인 KBS2 예능 프로그램 중에는 레전드급 스포츠 선수들이 예능 무대에서 ‘콤비 플레이’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위 캔 게임’, ‘축구야구말구’,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이하 당나귀 귀) 등에선 화려한 스포츠 경력을 갖춘 레전드급 선수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예능인·방송인이란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안정환과 예능 초보 이을용, 이들의 신선한 조합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축구 스타인 두 사람은 ‘위 캔 게임’에서 ‘e런 축구는 처음이야’ 코너를 이끌어 가고 있다. ‘e런 축구는 처음이야’는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발이 아닌 손으로 e스포츠 축구 게임에 도전하는 코너다.
절친으로 알려진 안정환과 이을용의 콤비 플레이는 그라운드 밖 컴퓨터 모니터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e스포츠에서 쪼렙(초보자 수준의 낮은 레벨)인 이들은 축구공을 눈앞에 두고도 생각과 다른 손놀림에 허둥대며 진땀을 흘리고,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며 티키타카 케미스트리를 선보인다. 또 선수다운 승부욕을 보이며 초반보다 한 층 성장한 게임 실력으로 놀라움을 안긴다.
실제 지난 13일 방송에서 두 사람이 축구 선수 백지훈과 조원희를 상대로 벌인 2:2 e축구 대결은 실전 경기를 방불케 했다. 주장 안정환에게 구박만 받던 이을용은 선취골을 넣었고, 수비에서도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 안정환 역시 화려한 기술과 센스 넘치는 플레이로 경기를 주도했고, 후반전에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원더골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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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이을용보다 더 이색적인 조합은 한국 양대 구기 종목을 대표하는 박찬호(야구)와 이영표(축구)의 결합이다. 지난 9일 첫 방송된 ‘축구야구말구’는 전직 운동선수들이 각종 생활 체육 고수들을 만나 이를 배우고 대화하는 형식의 스포츠 로드 버라이어티다. 박찬호와 이영표는 축구와 야구를 제외한 다양한 생활 체육 종목을 경험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승부를 벌인다.
은퇴 후에도 다양한 방송활동을 해온 두 사람이 한 예능 프로의 주축으로 나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방송경험으로 단련된 두 스포츠 스타는 첫 회부터 능숙한 입담과 변함없는 열정으로 프로그램 콘셉트에 빠르게 적응했다. 각자 닉네임 정하기부터 과거사 소환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대화는 시종일관 끊어지지 않았고 자연스레 이어졌다.
박찬호는 ‘투머치 토커’라는 별명다운 토크 열정으로 다른 출연자들의 혼을 빼놓았고, 이영표는 은근히 뺀질거리는 캐릭터와 할 말은 다하는 돌직구 캐릭터를 선보였다. 순박하고 어눌한 듯 하지만 마이웨이가 확실한 박찬호, 똘똘하고 논리적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허당스러움을 드러내는 이영표. 전혀 상반된 두 캐릭터가 뜻밖의 케미를 보여주며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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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야구 스타뿐만 아니라 농구 스포츠 스타들의 콤비 플레이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톰과 제리를 연상시키는 허재와 현주엽의 조합이다. 두 사람은 단독 진행을 맡고 있진 않지만 매주 ‘당나귀 귀’에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선후배 케미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주엽은 농구 감독을 사임한 유튜버로, 허재는 그의 유튜버 채널 투자자로 출연 중이다.
‘당나귀 귀’에서 남다른 먹성을 자랑한 현주엽은 투자금을 얻기 위해 성질을 죽이고, 허재는 투자금을 명목으로 후배인 현주엽에 끝없는 잔소리와 호통을 친다. 현주엽은 허재의 고성과 구박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에 지지 않고 소심한 반항을 이어간다. 허재 역시 싫은 티를 내면서도 현주엽의 요구를 들어주고, 잘 먹는 그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처럼 예능 프로그램은 단순히 스포츠 스타를 내세우는 것을 넘어서, 이들을 콤비로 엮어 프로그램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은퇴한 스포츠 선수들이 연예계로 진출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된 상황에서 또 어떤 스포츠 스타들이 콤비로 탄생할지, 이들이 구축하는 새로운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지 관심이 모아진다.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