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나와도 부자나라만…美·유럽·日 계약 싹쓸이

1도즈에 화이자 20弗·모더나 37弗 높은 가격도 문제
유통·보관에도 고비용…2024년돼야 전세계 보급 가능

제약회사 모더나/서울경제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도 개발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이 예방효과가 높다는 임상시험 중간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팬데믹 극복의 실마리가 마련됐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이들 제약사 백신이 전 세계에 안정적으로 공급되기까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전 세계 각지에 백신을 신속히 보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비싼 비용이다. 백신 자체의 가격도 높을뿐더러 보관·유통망을 마련하는 데에도 큰 비용이 든다. 모더나는 지난 여름 자사 백신 1도즈(1회 접종분)의 가격을 37달러(약 4만1,000원)로 책정했다. 존슨앤드존슨이 자사 백신 가격을 10달러로 책정한 점을 고려하면 매우 비싼 수준이다.

각국이 대량구매에 나서면 단일 물품의 가격을 깎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비관론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엄연한 기업인 모더나가 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에 할인율이 높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이자는 백신 가격을 20달러(약 2만2,000원)로 제안해 모더나보다는 저렴하다. 그러나 이 백신은 영하 70도의 초저온에서 보관해야 해 유통비용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미 CBS방송에 따르면 이 백신을 보관할 초저온 냉동고 1대의 가격은 2만달러(약 2,200만원)에 달한다. 이런 시설이 부족한 국가나 구매 여력이 없는 병원은 백신이 나와도 공급받을 길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두 제약사에서 생산하는 백신 물량 대부분은 고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부국에 몰릴 예정이다. 화이자는 현재까지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일본, 영국에 백신 총 11억 도즈를 판매하기로 계약한 상태다. 화이자는 2021년까지 백신 13억 도즈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76억명에 이르는 세계 인구와 비교하면 내년 안에 생산되는 백신 물량 대부분을 소수 부국에서 가져간다는 뜻이다. 모더나 역시 2021년 안에 백신 5억∼10억 도즈를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부국들이 물량 대부분을 선주문한 상태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미국은 모더나 백신 1억 도즈를 선주문했고, 추후 5억 회분을 추가로 주문할 수 있는 옵션도 계약에 포함했다. 이 인권단체는 캐나다(5,600만 도즈), 일본(5,000만 도즈), 유럽연합(1억6,000만 도즈)도 백신 대량 구매 계약을 마쳤다고 밝혔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9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함께 개발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의 3상 임상시험에서 예방률이 9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런 탓에 전 세계 백신 공급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 듀크대학교 글로벌 보건연구소는 최근 연구를 통해 2024년에야 전 세계 인구에 충분한 백신이 공급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부국을 제외한 대다수 나라는 백신 균등 공급을 목표로 추진되는 다국가 연합체인 ‘코박스’(COVAX)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코박스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병혁신연합(CEPI) 등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코박스 가입국들은 2021년 말까지 총 2회에 걸쳐 각국에 인구의 20%에 달하는 백신 물량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6개 제약사와 백신 대량 공급 계약을 맺은 미국은 코박스 가입국이 아니다.

듀크대 연구진은 미국이 주문 분량을 모두 확보하면 전 세계 백신 물량의 4분의 1을 통제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한편에서는 미국이 백신 지원을 외교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크리슈나 우다야쿠마르 듀크대 글로벌 보건연구소장은 “백신을 둘러싼 외교와 국가주의 사이 긴장감이 감돌 것 같다”고 말했다.
/장덕진 인턴기자 jdj1324@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