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월성 원전 1호기 전경. 감사원은 지난달 말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연합뉴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일단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 정책 집행 및 감사 과정에서 공무원 등 관계자의 형사법 위반 여부를 따져보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감사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넘어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 과연 어느 수준의 사법적 책임을 물을지 주목된다. 이 때문에 원전 관계자와 공직사회는 물론 여야 정치권까지 긴장하며 수사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검찰은 ‘원전 정책의 당부(當否·옳고 그름)’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정책 타당성 논란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의 핵심 쟁점은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는지 여부와 공무원들의 자료 파기를 비롯한 증거인멸 혐의를 어떻게 입증하고 이들을 어떻게 처벌할지에 맞춰져 있다. 이와 맞물려 여권이 방어막으로 동원한 ‘통치행위’에 대한 논란도 관전 포인트다.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 근거로 활용된 경제성 평가보고서가 뒤바뀐 과정이 석연치 않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공개한 삼덕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할 경우 2018년 5월 초안에서는 경제성이 1,778억6,000만원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한 달 후 최종 보고서에서는 224억1,7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월성 1호기 이용률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전기 판매단가를 kwh당 60원76전에서 48원78전으로 낮추는 등 8개 항목의 수치를 조기 폐쇄에 유리하도록 바꿔 경제성을 1,554억원이나 줄였다는 것이다. 감사원도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전기 판매단가를 낮춰 잡는 방법으로 원전 계속 가동 때의 추정 수익을 줄여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목되는 점은 검찰의 직권남용죄 적용 여부다. 관련 공무원들이 회계법인과의 회합을 통해 원전 이용률과 전기 판매단가 등을 조작하도록 압력을 넣은 정황들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회계법인 안팎에서는 “정부가 원하는 결과에 맞추기 위한 작업이 돼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형법 제123조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타인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다. 현 정부 출범 초 과거 정부를 공격할 때 동원했던 직권남용죄가 부메랑이 된 셈이다. 감사원은 관련자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부당 개입’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검찰이 직권남용의 구체적인 정황을 입증해야 할 숙제를 떠안은 셈이다.
감사원은 또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에 참석한 비상임이사들로부터 외부에서 경제성 평가에 개입한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조기 폐쇄를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만약 한수원이 이사회에 허위정보를 제공했다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다. 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이사회 의장을 교체한 것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조성진 비상임이사를 제치고 다른 비상임이사에게 의장을 맡겨 이사회 의결을 주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수원 이사회가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 문제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의혹도 검찰이 철저히 검증해야 할 쟁점이다.
◇증거인멸 의혹
감사원 보고서에는 산업부 공무원들이 일요일 심야에 사무실로 몰래 들어가 무려 444건의 파일을 삭제하는 등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감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기록돼 있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을 앞두고 산업부 담당 공무원들에게 컴퓨터에 저장된 월성 1호기 관련 문서는 물론 e메일·휴대폰 등 모든 매체에 저장된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졌다. 공무원들은 감사관과의 면담에서 “제대로 지워야 한다는 말에 원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파일명 등을 수정하고 다시 저장한 뒤 삭제하는 방법까지 동원했다”고 실토했다. 삭제할 자료가 너무 많아 여러 파일을 동시에 없애거나 폴더 자체를 삭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이런 심한 감사 방해 사례는 처음 본다”고 토로한 이유다. 심지어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이 월성 1호기 가동 연장의 필요성을 보고한 과장급 공무원에게 “너 죽을래”라고 말했다는 주장도 나왔으나 백 전 장관은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최 감사원장은 국회 답변에서 “(당시 장관이 과장을) 강하게 질책했다”고만 밝혔다. 법조계에 따르면 자료 삭제는 형법상 증거인멸, 공공기관기록물관리법 위반, 감사원 감사 방해죄 등에 해당할 수 있다.
관련 공무원들이 국가의 주요 시설인 원전의 경제성을 조작해 조기 폐쇄하는 바람에 국고 손실을 초래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수원은 2009년 월성1호기의 운전기간을 10년 연장하겠다며 계속 운전을 신청하고 7,000억원의 개보수 비용까지 투입해 설계수명을 10년 더 늘렸다. 박기철 전 한수원 이사는 “월성 1호기 폐쇄는 수조원의 국가 재산 손실을 낳았다”면서 “만약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쇄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낭비한 당시 경영진에게 배임죄를 물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감사원은 ‘한수원 이사회가 사적 이익을 취득하지 않았고 재산상 손해를 가할 의사가 없었다’며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안전하게 가동해 경제성도 챙길 수 있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한 것은 업무상 배임죄나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통치행위 논란
법적 책임과 정책 타당성 문제는 통치행위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대통령의 정당한 통치행위”라며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법심사가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월성 1호기 폐쇄는 대선 공약으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추진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워 다수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만큼 정책의 타당성 여부는 감사나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의 공약을 ‘국민의 명령’이라며 무조건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온당치 못하다는 게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견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77.2%의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한 지난 대선에서 41.08%의 지지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또 수치까지 조작하는 불법적 방식으로 수조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한 잘못이 있다면 이를 ‘통치행위론’으로 덮을 수 없다. 국가 백년대계와 관련된 탈원전정책 추진 여부는 반드시 합법적인 국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안전성과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법 절차를 무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발생한 예산 낭비와 에너지정책 혼선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월성 1호기는 국가의 중요한 변란과 관련된 통치행위로 보기 어렵다”면서 “설령 통치행위로 인정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돼 있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분명히 사법심사의 대상”이라고 못 박았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