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주택·상업지역이 접한 금싸라기 땅이 오랜 기간 공터로 비어 있었다. 일반주거지역에 속해 개발하기엔 사업성이 너무 떨어졌다. 건폐율 60% 이하, 용적률 200% 이하를 적용받아 웬만한 건물을 지어봐야 수익을 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대지의 형태도 문제였다. 두 필지가 합쳐져 ‘ㄴ’자 형태로 이뤄졌는데 건축을 하면 비효율적 공간이 발생하기 십상이었다. 대지면적 1,024㎡의 이 공간을 사들였던 가수 비는 9년간 기존 건물을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대부분의 대지를 주차장으로 활용했었다.
이 공간은 지난해 새로운 건물로 완전히 변신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한 지 2년여 만이다. 건축주인 비와 건축가인 고영선 씨, 시공사 (주)제효는 의기투합해 청담동 일대 로드뷰를 바꿀 수 있는 획기적 건물 ‘레인에비뉴(Rain Avenue)’를 창조해냈다. 제한된 토지에서 최적의 건축물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2020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부문 민간부문 대상(대통령상)을 받게 됐다.
레인에비뉴는 주택가와 상업지역에 끼어있는 근린생활시설이다. 북측으로 주거지역이 자리하고 남측은 도산대로변 상업시설이 이어져 있다. 고 건축가는 “근린생활시설이지만 적극적으로 도시와 연계하고, 열린 공간 그리고 그 장소성을 내포한 공간을 계획하고자 했다”며 “상업공간에서 대중의 유입은 곧 건물이 활기를 띠는 것이고, 그것이 상업공간의 본질에 충실한 계획임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비와 고영선 건축가는 레인에비뉴를 완성하기 위해 ‘채움’보다 ‘비움’을 선택했다. 대지에 잉여공간을 최대한 줄여 사업성을 높이기보다 개방 공간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개방 공간이 기존 대지의 장소성을 반영하고, 상업공간으로 활용할 건물로 대중의 유입을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ㄴ’자 형태의 대지는 이렇게 ‘11’자 형태로 나눠 새로운 창조물의 기반이 됐다. 고 건축가는 지상의 남은 공간을 중앙에 배치하고, 남측 주도로 쪽으로 열린 코트야드(Courtyard)를 조성했다. 대중과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창조한 것이다. 남북으로 긴 저층부는 도시 유입과 채광을 고려해 설계했다. 건축물 높이 제한에 따라 정북 방향은 상층부의 길이가 짧아지는 형태로 구성했다. 대신 동서방향으로 매스를 틀어 남측 채광과 조망을 확보했다. 외부공간은 내부공간과 연계해 수직·수평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상업과 주거, 공(公)과 사(私) 사이 매개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이 건축가의 설명이다.
남측과 중앙에는 선큰 공간도 마련했다. 외부 도로과 인접한 중앙의 코트야드와 직접 연결해 대중의 유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또 지하 평면 깊은 곳까지 채광과 환기도 최대화되도록 했다. 도시로 열린 중앙의 코트야드는 내부공간과 연계해 다양한 용도와 이벤트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상의 열린 공간을 지나서 수직으로 연결한 공용공간을 외부로 계획해 대중의 유입이 흐르듯이 수직적으로 연결했다. 지상 2층~3층은 코트야드와 관계를 수직적으로 이어가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각 층 발코니와 옥상 테라스는 각 실마다 외부공간을 확보하고, 나아가 공간의 내·외부 확장을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공간을 사용하도록 설계했다. 지상 6층과 옥상에는 루프테라스(Roof Terrace)를 형성해 도심 속 힐링을 위한 휴게 공간으로 배치했다.
건물에는 구조의 미학을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료를 활용했다. 형태와 구조에 대한 미학을 표현할 수 있는 노출콘크리트와 낙엽송 송판 무늬가 대표적이다. 주 건물은 포스트텐션 공법을 적용해 구조적으로 계획 천장고를 유지하면서 한편으론 층고를 낮추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포스트텐션 공법은 콘크리트 타설 전 관을 설치하고 관 안에 강연선을 넣어 고정하는 토목공학기법이다. 대형 교량 등에 주로 사용하는데 건축가는 건축물의 구조적 견강성과 심미성 등을 위해 이를 활용했다.
또 보가 없는 노출 천장은 개방감을 높여주는 효과를 주기에 충분했다. 양쪽 콘크리트 건물을 잇는 공용부는 철골구조로 설계해 건물과 재료적으로 분리된 느낌을 준다. 시각적으로도 경량함과 개방감을 전해 준다. 중앙계단은 여러 가닥의 가늘고 긴 로드(ROD)에 매달려 중앙선큰 위에 떠 있는 구조로 계획했다. 이는 건축 구조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수반했지만, 건축가와 시공사는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설계 완성도를 보였다. 고 건축가는 이와 관련 “중앙계단은 선큰 위에 떠 있는 구조로 계획했는데 구조적으로 도전이었지만 공간적으로 심미적 아름다움을 채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레인에비뉴는 오픈스페이스를 지향하겠다는 목표에 충실한 건축물로 최종 완성됐다. 고 건축가는 “건폐율 제한으로 생긴 대지의 잉여공간을 사유화하기보다는 오픈스페이스를 통해 기존 대지의 장소성을 반영하고, 상업공간이 될 건물 안으로 대중의 유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상업공간의 본질에 충실한 계획을 설명했을 때 선뜻 동의해준 건축주 덕분에 구상대로 완공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건축주인 비는 올 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매출 감소 등 어려움을 겪는 레인에비뉴 상가 임차인을 위해 임대료를 50% 인하하는 등 ‘착한 임대인 운동’도 진행했다. 레인에비뉴에는 현재 서양식 펍, 레스토랑 등이 입점해 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레인에비뉴의 중앙계단은 여러 가닥의 가늘고 긴 로드(ROD)에 매달려 중앙선큰 위 떠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레인에비뉴는 남측에 선큰 공간을 마련해 건물 내·외부의 확장이 자유롭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