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베누의 표면을 채취하는 오시리스 렉스 탐사선./NASA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미항공우주국(NASA)의 오시리스 렉스 탐사선이 ‘베누’라는 이름의 소행성에 잠시 내려앉았다. 표면의 흙과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단 10초간의 하이파이브,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오시리스 렉스는 지난 2016년 9월 지구를 떠난 이래 광막한 우주를 묵묵히 비행했다. 소행성 베누까지 가는 데만 2년, 그 주변 궤도를 돌며 관찰하는 데 또다시 2년여를 투자했다. 지름이 롯데월드타워 높이보다도 작은 이 소행성을 따라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기가 작으니 탐사선을 끌어당기는 중력도 약해 자칫하면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낯설고 매력적인 세계의 토양 샘플을 소중히 담은 오시리스 렉스 탐사선은 오는 2023년 가을 무렵 지구에 돌아올 예정이다.
아직 채취한 샘플을 받아보기 전이지만 오시리스 렉스는 이미 우리 인류의 지식의 지평을 한층 넓혀주었다. 지구는 생성된 이래 지각판의 변동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큰 규모에서부터 비와 바람과 같은 작은 규모까지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소행성이나 혜성과 같은 작은 천체들은 태양계가 생성되고 행성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남은 잔해 상태 그대로 수십억년이나 잔존해왔다. 이런 천체들을 연구하면 우리 지구가 어떻게 탄생했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소행성대라는 구역이 존재하므로 소행성이라고 하면 모두 소행성대 안에만 머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소행성대 외에도 태양계 내의 다양한 위치에서 소행성의 군집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는 화성보다도 가까이 존재하면서 때때로 지구 궤도를 넘나드는 ‘아폴로 소행성군’이 있는데 베누도 여기에 속한다. 지구가 한참 전에 지나간 길목에 소행성이 들어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지구와 소행성이 같은 시기에 가까운 구역을 지나간다면 위험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자갈 덩어리라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멋진 별똥별이 돼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겠지만 조금 큰 소행성이 2013년 러시아 남부의 첼랴빈스크 상공에서 폭발했을 때는 1,00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구 근처에 있는 소행성들을 샅샅이 찾아내 목록화하고 그 궤도를 추적하는 감시 임무의 중요성이 대두했다. 베누 역시 지구가 평소 다니는 길목을 기웃거리기 때문에 관찰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포피스와 지구의 조우. 파란 점은 인공위성이다./NASA
오시리스 렉스의 여러 과학적 성과 중 하나는 베누의 궤도와 자전 주기가 바뀌는 것을 실시간으로 관측한 것이다. 소행성에도 밤낮이 있어 낮에 해당하는 대략 절반의 지역에만 해가 드는데 태양으로부터 흡수한 에너지를 소행성이 방출할 때는 전 방향으로 내뿜는다. 이 비대칭성이 야르콥스키 효과와 YORP 효과를 야기해 소행성의 진행 방향이 조금씩 틀어지고 자전 주기도 바뀐다. 행성처럼 무거운 천체는 그런 불균형에도 끄떡없지만 작고 울퉁불퉁한 소행성들은 햇빛만으로도 궤도가 바뀌거나 자전 주기가 달라지고 심지어는 쪼개지기도 한다. 오시리스 렉스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는 어떤 소행성이 지구에 너무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는 감시 대상인지 더 잘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주요 관심 대상 중 하나로 소행성 ‘아포피스’가 있다. 2004년 발견된 이 지름 300m짜리 소행성은 주기적으로 지구에 상당히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주요 감시 대상 천체로 보고 꾸준히 추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궤도로만 보면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지구 가까이는 오되 충돌할 정도가 아니라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아주 좋은 탐사 대상일 수도 있다. 막대한 연료와 시간을 들여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아포피스가 지구와 근접 조우하는 시기에 맞춰 탐사선을 보내면 소위 ‘가성비’ 좋은 우주 탐사 임무를 해낼 수 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는 다양한 탐사 임무를 준비하고 있다. 목표 시기는 2029년 4월로 이때는 아포피스가 지구의 정지궤도 인공위성만큼이나 가까이 접근해 지상에서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아직 우주 탐사 경험이 적은 우리나라도 지금부터 준비하면 우주 탐사 선진국들과 함께 다양한 기기로 아포피스를 관측해 인류의 과학 지식을 진일보시키는 경험을 공유할 수도, 우리가 그 탐사를 주도할 수도 있다. 최고의 과학적 성취를 이루려면 탐사선을 언제 발사하는 게 좋은지, 어떤 관측 기기를 갖추면 좋을지 지금부터 본격적인 고민과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아랍에미리트는 2009년 우리나라 기업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개발한 지 불과 11년 만에 화성 탐사선을 발사할 정도로 우주 분야를 빠르게 성장시켰고 앞으로도 야심 차게 우주 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우주 탐사 임무야말로 국가의 과학, 기술, 그리고 교육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는 최고의 기폭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