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향후 30년에 걸쳐 석탄발전소를 퇴출하겠다는 계획을 19일 갑자기 공개했다. 석탄 발전을 제로화(0)하는 대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80%까지 확대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도 없이 지난 2월 전문가·시민사회·산업계·국민 등이 참여한 ‘2050 저탄소사회 비전 포럼’에서 제시했던 탄소중립 사회 실현 시기도 12년 앞당겼다. 산업과 에너지는 물론 국민 생활 전반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올 정책목표가 부처 협의는커녕 사회적 합의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불쑥 제시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환경부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50년 장기 저탄소발전전략안(LEDS)’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추가 검토안을 공개했다. 정부는 여론 수렴을 거쳐 12월 국무회의에서 심의한 후 유엔에 공식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의 추가 검토안에서는 비전포럼이 2월에 발표한 것보다 탄소중립 사회를 2062년에서 2050년으로 앞당겼다. 아울러 비전포럼이 내놓은 가장 급진적 안보다 더 앞서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60%를 65~80%까지 높이고 석탄발전은 4.4%에서 0%로 낮추겠다고 수정했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도시가스를 전기 및 수소로 대체하고 친환경 건축을 전면 확산시키기로 했다. 또 친환경차 대중화 시대를 열고 완전자율주행차를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다수 국가 간에 연결된 대규모 전력망)를 구축한다는 방대한 계획도 담았다.
기술혁신에 대한 장밋빛 기대 속에 불확실한 미래를 단정적으로 제시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환경부가 자체 연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부처 간에 합의된 바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공청회에서도 2050년 탄소중립을 실제로 가능하게 할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은 없고 기술혁신을 환경부가 지나치게 낙관해 “포장은 그럴듯하나 알맹이는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판이 커지자 환경부는 “2050년 재생에너지 및 석탄발전 비중은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조지원기자 jw@sedaily.com
주력산업 현실과 감축수단도 반영하지 못한 목표...대책없이 깜짝공개
[목표치만 높인 ‘탄소중립’]
■정부 “2050년 석탄발전 제로”
유엔보고서 제출전 마지막 토론서
부처 논의 않고 급진적 내용 발표
구체적 계획 없이 新기술만 나열
신재생 대체땐 전기료 폭탄 불가피
“말잔치 아닌 실효성 필요” 지적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 공청회’에 참석해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환경부
환경부가 19일 국회 공청회에서 발표한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안(LEDS)’ 추가 검토안에는 지난 2월 저탄소사회비전포럼이 정부에 제안했던 다섯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1안보다 더 급진적인 내용이 담겼다. 환경부는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확정된 수치가 아니라고 하지만 올해 말 유엔 공식 보고서를 제출하기 전 마지막 공개토론 자리에서 부처 간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내용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저탄소사회비전포럼은 전문가·시민단체·산업계·청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협의체로 올 2월 2050년 저탄소 비전 등을 정부에 제안했다. 정부는 비전포럼 제안을 바탕으로 3월부터 범정부 협의체를 구성해 유엔에 보고할 LEDS 정부보고서를 작성해왔다. 범정부 협의체에는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외교부 등 15개 부처가 참여했다. 다만 이번에 발표한 추가 검토안은 부처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월 비전포럼은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정부에 제시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목표를 2017년 대비 75% 감축한다는 1안을 저탄소 전환을 최대한 추진하는 급진적인 방안으로 분류했다. 도전적 목표로 설정한 1안에서도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4%로 낮추고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을 60%까지 늘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봤다. 그런데 이날 환경부가 내놓은 추가 검토안은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65~80%까지 높일 뿐 아니라 석탄발전 비중을 아예 0%로 낮춘다는 계획을 담았다.
문제는 환경부의 목표가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현실과 감축수단에 대한 기본적인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7월 철강·석유화학·시멘트·반도체·디스플레이 등 5대 업종협회는 2월 비전포럼의 권고안이 시행되면 제조업의 경우 최대 44% 생산 감소는 물론 일자리도 86만∼130만개가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실제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2050 LEDS를 제출한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수소로 철을 만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통해 각각 5%, 10%의 온실가스만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권고안에서는 45%까지 줄이겠다고 제시했다”며 “감축수단에 대한 목표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여기다 화석연료발전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경우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도 뒤따른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석탄이나 원자력발전보다 비싸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어나면 단가가 떨어질 수 있지만 국내 여건이 일조량과 바람 등이 풍부하지 않아 재생에너지 활성화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추가 검토안에는 또 동북아 슈퍼그리드(대규모 전력망) 구축, 순환경제(원료 재사용·재활용) 강화, 대기 중 탄소 직접 포집(DAC) 기술 확보, 건축물 LCA(Life Cycle Assessment) 기반 최적설계, 완전 자율주행차 등도 새롭게 포함됐다. 기존 대책도 수소환원제철 적용 확대, 탄소포집저장활용기술(CCUS), 도시가스 대체, 건축물 도시가스 대체 등으로 강화했다.
이에 대해 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나열한 임기응변식 전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DAC나 CCUS 등과 같은 탄소포집 기술은 현실 가능성이 낮은 기술이다. 수소환원제철도 아직 상용화한 국가가 없는 상황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첫발도 떼기 어려운 과제다. 환경단체조차 구체적 목표가 실종된 채 두루뭉술한 기술만 나열했다고 지적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번 공청회에서 제시된 정부안은 지나치게 기술 중심적”이라며 “30년 뒤의 비전인 2050년 LEDS가 말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정부 정책으로 실행되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환경부는 모든 안이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검토 중인 내용이며 향후 기술발전이나 부처 협의를 통해 시나리오를 정교화해 유엔에 제출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약속한 연말 제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환경부가 기존 안보다 급진된 방안을 갑작스럽게 제시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시정연설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한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공청회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관계부처에서 2050년 LEDS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며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야말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고 말했다.●/조지원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