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진열된 담배/서울경제 DB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냈으나 과거 개인 흡연자가 소송을 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흡연 외 다른 요인을 질병 원인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법원의 기존 판단을 넘어서지 못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홍기찬 부장판사)는 이날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하면서 2014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2014년 4월 10일 개인 흡연자와 가족 등 30명이 담배 제조사인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2건을 모두 원고 패소로 확정했다. 이는 담배 소송 가운데 대법원의 첫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흡연과 원고들에게 발병한 폐암 사이에 역학적으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흡연자가 흡연했다는 사실과 비특이성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흡연과 질병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려면 흡연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발병 시기, 흡연 전 건강 상태, 생활 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 다른 위험인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논리였다.
건보공단이 낸 소송의 1심을 심리한 재판부도 “건보공단이 제출한 증거들에 의하면 대상자들이 20년 이상 흡연했으며 질병을 진단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건보공단은 흡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한 진료비를 물어내라며 2014년 4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총 500억 원대 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재판부는 “위험인자인 흡연과 질병 사이에 여러 연구 결과 등이 시사하는 바와 같은 역학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하더라도, 대상자들이 흡연했다는 사실과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해서 그 자체로 양자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법원은 건보공단이 보험급여를 지출한 것을 ‘손해’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단도 내렸다. 건보공단은 주위적(주된)·예비적 청구 이유를 구분해서 소송을 냈다. 주위적으로는 보험급여를 지출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고, 예비적으로는 제삼자의 행위 때문에 보험급여를 지급했을 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 즉 구상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건보공단의 주위적인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급여를 지출하는 것은 건강보험법에 따라 자금을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어떤 법익 침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건보공단이 급여를 과도하게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건보공단의 역할에 따른 비용 집행일 뿐 손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건보공단의 예비적 청구도 질병과 흡연의 인과 관계에 대한 판단을 들어 기각했다. 제삼자(담배회사)의 행위 때문에 보험급여를 지급했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웅배 인턴기자 sedati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