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여관이었던 통의동 보안여관(오른쪽)과 지난 2016년 옛 건물의 경호원처럼 옆에 들어선 신축건물은 ‘보안1942’라는 이름의 문화생산 아지트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경제DB
“당신을 보안손님으로 초대합니다.”
청와대처럼 안보가 중요한 곳에서는 통상적인 출입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출입증을 패용하지 않고도 드나드는 특별한 방문자들이 ‘보안손님’이라 불리곤 한다. 그만큼 최고 권력자와 가까운 VVIP로도 해석된다. 청와대와 인접한 ‘통의동 보안여관’이 특별한 ‘보안손님’을 모집하는 중이다. 단, 여기서 보안손님이란 오는 2021년부터 ‘비영리 민간단체’로 성격이 변화하는 통의동 보안여관의 회원이자 공간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총회 회원을 뜻한다. 귀한 분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보안손님’은 매해 연말 개최될 총회에 참석할 자격을 얻고, 총회에서는 통의동 보안여관의 운영위원이 선출될 예정이다.
경복궁의 서쪽 문인 영추문 앞에서 언제부터 보안여관이 운영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미당 서정주가 자서전 ‘천지유정’에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서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고 적은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전한다. 폐쇄 등기부등본을 뒤지고 ‘경성상공명부’의 1938년(소화13년) 기록을 조사한 결과 통의동3번지의 ‘보안여관’에서 세금 31.60원을 냈다는 것이 강영조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이후 신축 혹은 개축 공사가 있었던 것인지 보안여관 천장에서 발견된 상량문에는 ‘소화17년(1942)’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안1942 건물 2층에 위치한 보안책방에서 진행된 통의동보안여관 아카이빙 전시의 한 장면. /서울경제DB
70년 이상 여관이던 이 곳을 가난한 예술가, 갓 상경한 젊은이, 눈 붙일 틈 없이 바쁜 정부부처 관리들이 드나들었으나 2004년에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휑하던 적벽돌 2층 건물을 최성우 대표가 인수해 현대예술을 담은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게 2007년의 일이다. 자칫 재개발로 사라질 지도 몰랐을 공간에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간판을 다시 내걸어 전시공간으로 운영해 온 최 대표는 지난 2016년, 바로 옆에 ‘경호원’처럼 건물을 신축해 다목적 문화공간인 ‘보안(BOAN) 1942’로 이끌고 있다.
최근 이곳의 운영을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환하고 ‘보안손님’제도를 운영하기로 결정한 최 대표는 “지난 14년간 30만 명 이상이 다녀갔고, 전시가 있는 주말에는 800~1,000명까지 방문한다”면서 “전시 뿐만 아니라 공연부터 북토크까지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지하공간, 책방과 게스트하우스인 ‘보안스테이’까지 마련되면서 공간 활용률이 최대 800%에 이르는 곳이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개인이 소유한 공간이지만 보안여관의 활동은 공공의 역할로 확장됐기에 향후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고 밀도있게 운영하기 위해 ‘보안손님’ 제도를 구상했다”면서 “이와 함께 공간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보다 명확히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시각예술 생태계 안에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해 ‘통의동 보안여관’이 문 연 만큼 수요자들에게 어떤 혜택과 어떤 자부심을 줄지 계속 고민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안여관 지하2층의 ‘보안하우스B’
이를 계기로 ‘보안여관’의 운영은 더 견고해질 전망이다. 그간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받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부금 증빙이나 세금계산서 영수처리도 할 수 없던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보안손님의 연회비는 3만 원이다. 카페 33마켓의 1만원 무료쿠폰 및 10% 할인, 보안책방 5% 할인, 주말·공휴일을 제외한 보안스테이 10%할인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또한 보안손님에게는 예술가와의 협업으로 제작될 정기 매거진이 발송되며 별도의 기획프로그램도 마련될 예정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