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가 들춰낸 우리안의 ‘정상가족주의’…이젠 ‘다양한 가족’ 고민할 때

사유리 ‘비혼 출산’ 소식에 촉발된 가족 다양성 논의
‘생계·주거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국민 66% 넘지만
해외와 달리 한국에선 미혼여성 보조생식술 어려워
법률혼 외 동거관계 보호·지원하는 법·제도도 전무
여당 “새로운 가정형태에 대한 제도개선 논의할 것”

방송인 사유리가 지난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출산 소식을 알리고 있다./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화제가 된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의 ‘비혼 출산’을 계기로 가족형태의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법률혼으로 맺어진 이른바 ‘정상가족’ 중심의 관련 법·제도를 이제 보다 다양한 형태의 가정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사유리가 지난 16일 전한 출산 소식은 ‘제도와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라는 질문을 한국사회에 던져줬다.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사유리는 “난소 나이가 많아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 결혼하기는 어려웠다”며 비혼 출산을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이에 대해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결혼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고 했을 때는 타의에 의한 선택일 때가 많지만 사유리는 ‘비혼 출산’이 본인의 적극적인 선택이자 나아가 좋은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며 “결혼과 연애의 틀을 벗어나 가족을 만든 사례라는 점에서 반향이 크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 다양성 수용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6.3%가 ‘혼인·혈연과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할 경우 가족이라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 혼인에 대한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63.4%에 달했다. 이중 20대의 응답은 75.3%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인공 체외수정 과정 중 한 장면. /AP연합뉴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미혼여성의 정자수증을 통한 출산’의 경우 국내 생명윤리법과 모자보건법은 원칙적으로 미혼여성의 정자 수증과 보조생식술(인공수정·체외수정)을 금지하진 않고 있다. 다만 국내에선 정자 기증이 활발하지 않은 탓에 난임 부부조차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를 기증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특히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 따르면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시술)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었다”는 사유리의 발언은 법적으론 틀려도 현실적으론 맞는 얘기인 이유다.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 28개국 중 영국·스페인 등 19개국은 미혼 여성과 레즈비언에게 보조생식술을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이 같은 내용의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발의돼 ‘가족해체에 반대한다’는 시위도 이어졌지만 결국 올해 1월 법안이 통과됐다. 이에 프랑스에서는 보조생식술을 받는 미혼 여성들도 난임수술 지원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법률혼 이외의 비혼 동거 커플에 대한 제도도 마찬가지다. 나 연구위원은 “현재 대부분의 서구국가에서는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동거관계에 있는 비공식 가족을 보호하고 지원해주는 정책들이 마련돼있다”며 “동거관계를 등록하면 여러 세금이나 주거 문제에서 법적 부부에 준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장례나 병원 입원 시에도 가족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팍스(PACs)’, 독일의 파트너등록법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지투데이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이러한 내용을 담은 법률은 물론 조례조차 없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비슷한 내용을 담은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시도했지만 종교계 등의 반대에 밀려 무산됐다. 비혼을 백안시하는 문화와 제도 공백 탓에 2018년 기준 한국의 혼외출산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0.7%)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사유리의 비혼 출산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새로운 가족형태에 대한 논의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앞으로 정치권에서 새로운 가정형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 같다”며 “제도개선을 진지하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진선미 의원실에서 보좌진으로 일하며 생활동반자법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황두영 작가는 “사유리의 임신과 열띤 반응은 누군가와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대중의 욕구가 현행법의 테두리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다양한 가족이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어떠한 제도적 틀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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