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0세기 홍해 양쪽 연안에는 시바 왕국이 있었다. 시바를 다스린 여왕 마케다는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현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보고 싶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마케다의 미모에 반한 솔로몬은 그가 궁전에서 자기 허락 없이 어떤 것이라도 취하는 순간 자신의 여인이 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어느 날 밤 짜고 매운 음식 탓에 물 한 잔을 마셔버린 마케다는 약속대로 솔로몬과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했다. 마케다가 시바로 돌아와 낳은 아들은 나중에 메넬리크 1세가 돼 지금의 에티오피아 북부 일대에 악숨 왕국을 세웠다.
메넬리크가 악숨을 건설하는 데는 모세의 십계명 석판이 들어 있는 성궤가 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성인이 된 메넬리크는 예루살렘에 가서 아버지인 솔로몬을 만났고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 있던 성궤를 가져왔다. 이 성궤는 현재 악숨에 있는 성모마리아시온성당의 성궤 보관소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는 성궤를 지키는 수도사 외에 누구도 들어갈 수 없고 수도사는 죽기 전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성궤가 실제로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악숨 지역에는 성궤 보관소 말고도 시바 여왕의 왕궁터와 목욕탕으로 보이는 성곽 등 유적지가 많다. 130여 개에 달하는 오벨리스크도 볼거리다. 오벨리스크는 사각 돌기둥 형태로 만들어진 기념탑으로 높이가 33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악숨 왕국은 로마·이집트·인도 등 주변국들을 상대로 상아·향신료·노예 등을 팔면서 경제력을 키웠고 7세기 이슬람 세력에 밀려 쇠퇴하기까지 지금의 수단과 아라비아반도까지 영토를 확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3세기 때 인물인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는 당대의 4대 강대국으로 로마제국·페르시아·중국과 함께 악숨 왕국을 꼽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지금도 자신이 악숨 왕국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악숨 지역의 공항이 에티오피아 반군에게 파괴됐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중앙정부가 6월 코로나19를 이유로 전국 지방선거를 연기하자 지방 정치 세력이 반발하면서 시작된 갈등이 군사 충돌로까지 번졌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만 잘 지켜도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안타깝다.
/한기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