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승환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대표가 25일 서울대 연구공원 내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대학의 창업 생태계 선순환 구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서울대에서 창업하는 교수들이 연간 30여명 되는데 대학기술지주의 자회사로 시작하는 경우는 한두 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부 교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창업에 성공해도 수익금을 거의 기부하지 않아요.”
목승환(42·사진)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대표는 25일 서울대 연구공원 내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교수는 나랏돈으로 연구하며 혜택을 많이 받는데 성공한 뒤 과실을 다 가져가면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대학생 때 이미 창업에 도전한 경험이 있고 이후 직장 생활을 하다 다시 창업에 도전해 성공했으며 민간 투자사를 거쳐 지난 8월부터 서울대 기술지주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급속히 진행돼 대학에서 기술 기반 창업이 절실한 상황에서 미국·중국·일본 등 해외 대학은 그런 방향으로 속도를 높이고 있다”며 “대학기술지주가 교수와 학생들의 창업을 장려하고 발굴해 투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체로 열악한 형편”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11년째 등록금이 동결돼 대학이 기술이전이나 창업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며 “대학기술지주가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갖도록 한 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교수와 학생 창업 시 의무적으로 자회사에 편입되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교수가 교육·연구하고 기술 기반으로 창업해 대학과 나라에 기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선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
△교육·연구를 우선하는 대학들이 논문 위주 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수가 창업해도 대학과 관계없이 하려고 하지 대학기술지주의 자회사로 들어와 윈윈하려는 모습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학 산학협력단이나 기술지주가 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직 미흡한 측면도 많다. 미국 대학에 비하면 우리나라 대학의 창업 생태계가 조족지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교수들이 창업하고 싶어도 창업 승인이 까다롭다고 하소연하는데.
△그런 얘기도 많이 나왔는데, 요즘은 창업 승인율이 70% 정도까지 높아졌다. 창업지원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창업 취지와 학교에 대한 기여 등을 본다. 이공계뿐 아니라 최근 의대 교수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인문학 분야에서도 창업 움직임이 나타나는 추세다.
-서울대는 교원 창업 기업 중 대학기술지주회사 참여 비율은 어느 수준인가.
△대략 매년 교수들이 30여개사를 창업하는데 대학기술지주에 들어오는 회사는 한두 개밖에 안 된다. 대학에 지분을 주지 않고 창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서로 윈윈했으면 한다. 교수가 창업하더라도 대학의 지분 투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나중에 성공하더라도 기부를 조금 받는 식이다. 그나마 기부를 전혀 하지 않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박희재 교수와 이기원 교수 등 모범 사례도 있는데.
△서울대 실험실 벤처 창업 1호인 박 교수가 성공한 뒤 100억 원을 내놓았지만 그 뒤 그렇게 하신 분이 없다. 이 교수는 지주회사로 들어가지 않아도 독자 수익 모델을 갖고 잘 클 수 있는데 학교와 상생하겠다는 생각으로 기술지주회사에 지분 30%를 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 창업 교수의 경우 교수와 대표를 겸직하며 국가와 대학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지만 좀 될 것 같으니 교수를 그만두고 나갔다. “내가 잘나서 그랬어”라고 하는데 대학의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렇게 됐을까.
-팁스(Tips) 운용사 등 외부 투자사가 대학을 제치고 교수와 직거래하면서 대학의 투자를 막는 경우도 많던데.
△그것도 큰 문제다. 지금 좋은 기술로 창업한 교수들을 외부 투자사에 빼앗기고 있다. 교수들에게 ‘학교에 지분을 왜 주느냐’며 유혹해 아주 헐값에 지분을 취득하면서 정작 대학지주회사의 참여는 꺼리게끔 조장하는 세력이 많다. 교수들도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경우 교수가 창업해 대표를 맡으면 교수를 그만둬야 하는 등 해외 대학에서는 제약이 있는 것에 비해 우리 대학교수들은 혜택을 많이 받는 편이다. 일부 교수들은 ‘대학기술지주의 자회사에 들어가야 귀찮고 지분도 많이 줘야 하는데…’라고 하는데 큰 틀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동참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학기술지주의 자회사 지분 20% 이상 유지 조항을 10% 이상으로 낮추자는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는데.
△맞다. 현행법에는 대학기술지주가 대학의 본계정으로 자회사에 투자할 때 지분을 20% 이상 가져야 한다. 대학 인프라에서 나온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교수들의 자회사 참여가 부진한 측면도 있어 10% 이상 정도로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교수가 공짜로 지분을 주는 게 아니라 대학에서 지식재산권(IP)을 가져오거나 직접 출자를 받는 개념이지만 교수의 창업 의욕을 꺾을 필요는 없다.
-자회사 지분율을 대폭 낮출 경우 교수와 학생들이 창업한 기업의 참여를 의무화했으면 하는데.
△동감이다. 교수와 학생이 창업할 수 있도록 학교가 적극 돕고 성공하면 학교로 일부 환원될 수 있도록 대학기술지주회사 참여를 의무화하면 어떨까 싶다.
-동시에 대학기술지주의 역량을 높여야 하는데.
△사실 민간 투자사에 비해 대학기술지주가 재원이나 인력 측면에서 열악한 편이다. 대학 행정 수준이 높지 않고 제약 조건도 적지 않다. 보수 조건도 그렇게 좋지는 않아 민간 투자사에 비해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 저희는 인력 수준을 높이기 위해 투자 성공 시 인센티브 요건을 민간 투자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펀드를 만들어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초과 수익 일부를 받아 기여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했다. 아쉬운 점은 대학에서 대학기술지주를 부속기관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교수와 교직원의 인식이 바뀌지 않아 애로가 많다. 이러니 현재 200억원 이상 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대학기술지주회사는 서울대·고려대·포스텍 정도에만 있다.
-대학기술지주 대표가 3년 임기 중 수익률을 높이려고 우량 자회사 지분을 조기에 파는 경우도 있던데.
△조만간 상장하는 한 서울대 교수 기업의 가치가 7,000억원 수준인데 지난해 초 400억원 수준에서 판 것도 있다. 자회사 지분 20% 보유 룰로 인해 기업이 커나가는 속도에 맞춰 지분을 유지하기가 힘들어 간혹 급성장이 예상되는 곳도 중도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대학기술지주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데.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대학의 기술 사업화나 창업 의지도 크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대학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교수가 창업할 때 기술지주가 지분을 많이 갖고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선순환을 꾀하고 있다.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정부가 3년 전쯤 도쿄대·와세다대 등 4개 대학의 기술지주회사들에 총 1조원가량 출자해 기술 기반 창업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제는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얘기를 좀 해보자.
△저희는 대학 내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돈이 필요해 모태펀드를 비롯해 우량한 외부 기관투자가와 벤처캐피털, 일부 대학과 개인의 자금 등으로 펀드를 만들어 열심히 하고 있다. 2008년 설립된 뒤 지난 3년 동안 총 500억원가량 모아 5호까지 펀드를 조성해 50여개 기업에 투자했다. 올해만 30개 가까이 투자했다.
-자회사 중에 이기원 교수의 ‘밥스누’라든지 우량 자회사가 많더라.
△지난해 기준으로 자회사가 27개인데 약콩두유로 널리 알려진 밥스누 등 좋은 기업이 많다. 물론 외부 스타트업 투자도 활발히 한다. 벤처캐피털과 함께 투자하기도 한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팁스 운용사가 60개가 조금 넘는데 그중 하나이기도 하다. 투자 성과 측면에서 보면 스타트업이 불과 5억원의 가치를 기록할 때 투자해 1년 반 만에 200억원의 가치로 성장한 곳도 있다. 지금까지 5호 펀드 중 1호 펀드 투자 기업부터 이익을 회수하고 있다. 밥 랭어 MIT 교수는 20개 이상 창업해 나스닥에도 많이 상장했는데 직접 최고경영자(CEO)를 맡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경영을 맡긴다. 우리 대학에도 이런 교수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하려는 교수나 학생,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한다면.
△학생 때 창업해도 되지만 벤처기업으로 진출해 경험을 쌓고 창업에 도전하는 것도 좋다.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 실리콘밸리를 보면 창업자 가운데 젊은 사람도 많지만 시니어와 주니어가 결합한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와 글로벌 고객들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팀을 만들고 사명감과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목적성만으로 접근하면 지치니까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교수가 창업하면 교육·연구와 상충되는 측면이 있는데 잘 조율해야 한다. 대학도 창업자를 배려하고 유연하게 가야 한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재료공학부를 졸업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 M&A 신사업팀장 등을 지냈다. 2000년대 중반 인터넷전문은행 1세대 서비스 기획·개발에 참여했고 2009년 나무앤을 창업, 8년 동안 100종 이상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서비스한 뒤 스타트업 투자사인 더벤처스에 매각했다. 이후 더벤처스의 투자이사를 거쳐 2016년 말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투자전략팀장으로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 팁스 운영센터장과 S-이노베이션 창업보육센터장도 겸임했다. 지난 3년 동안 총 500억원가량 규모의 펀드 5개를 결성했고 8월부터 내부 승진 인사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