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후보자추천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미소를 띠고 있다. /권욱기자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면서 여야의 극한 대립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총장의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침묵하면서 거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대신 174석의 거대 여당이 전면에 나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사퇴를 압박하면서 국회가 윤 총장의 직무 정지를 놓고 올 스톱 상태에 놓였다. 국민의힘은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을 향해 “비겁한 대통령”이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2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 총장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 명령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날 “문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 발표 직전에 관련 보고를 받았으며 그에 대해 별도의 언급은 없었다”고 한 발언이 지금까지 문 대통령의 의중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일한 언급이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침묵을 이어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윤 총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갔다. 이낙연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법무부는 윤 총장에 대한 향후 절차를 엄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해주기 바란다”며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신속히 진상 조사로 밝히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 총장은 검찰의 미래를 위해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달라”고 강조했다. 총장의 거취에 대한 언급을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아닌 여당 대표가 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침묵과 관련해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7월 윤 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해달라고 주문했던 문 대통령이 현 정권 인사 등에 칼끝을 겨누고 있는 윤 총장에게 직무를 정지시킬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본인 주도로 사실상 해임했다. 당시 노 대통령의 “난 그렇게 이 검찰 조직의 상층부를 믿지 않는다”는 발언이 알려진 후 3시간 만에 김각영 검찰총장은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결국 문 대통령이 과거 노 대통령처럼 윤 총장에 대해 언급할 경우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어 침묵을 유지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침묵이 지지율 관리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 총장을 압박하면 할수록 문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지고 윤 총장 지지율은 오르는 것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해임을 주도하면 ‘정치인 윤석열’의 체급을 확 높여주는 효과가 나타날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편을 들었다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도 있어 청와대 입장에서는 고민스러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자당 법조인 출신 긴급 회의에서 “추 장관의 행태와 폭거도 문제지만 뒤에서 묵인하고 어찌 보면 즐기고 있는 문 대통령이 훨씬 더 문제”라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수사를 늦추지 말라는 윤 총장이 잘못한 게 뭐가 있나. 마음에 안 들면 문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해임하든 하라”고 쏘아붙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유상범 의원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통령이 당연히 책임질 부분을 책임 안 지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추 장관이 징계 제청하고 그것을 받아준 후 ‘윤 총장을 밀어내기 한 이는 내가 아니라 추 장관이다’ 이렇게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야권 잠룡인 유승민 전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법무부 장관 뒤에 숨어서 한마디 말도 없는 대통령”이라며 “왜 이렇게까지 비겁한 것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정치 평론가들은 결국 ‘추·윤 갈등’을 해결할 사람은 문 대통령이 유일한 만큼 청와대가 직접 나서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결자해지는 어찌 됐든 문 대통령이 해야 한다”며 “윤 총장을 물러나게 할 경우 공정하지 않다는 여론이 일 수 있다. 추 장관을 개각 대상 명단에 포함시켜 추 장관과 윤 총장 둘 다 물러나게 하는 것이 맞다”고 제언했다. /임지훈·김인엽·김혜린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