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무위자연·초록동색…인간사 닮은 식물 세상

■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
이선 지음, 궁리 펴냄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면 어찌 그리 우리 삶과 닮았는지 놀랄 때가 많다.”(본문 중)


식물생태학 박사인 저자가 오랜 세월 산과 들을 다니며 마주한 ‘인간 세상과 닮은 식물 세상’에 대한 감상을 사자성어로 정리했다. 10여 년 전, 저자는 경남 하동의 송림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순간 독특한 풍광과 마주했다. 비슷한 나잇대의 소나무의 수관 경계가 마치 퍼즐처럼 촘촘하게 맞물려 있는 모습이었다. 하늘 쪽으로 열린 제한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각 나무의 가지들은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뻗어 나갈 방향을 결정한다. 살아남기 위해 적절히 양보하고 타협한 식물들의 모습 위로 익숙한 속담 하나가 포개졌다. ‘누울 자리를 봐가며 발을 뻗는다(양금신족·量衾伸足).’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숲 속 세상에서 양금신족은 생존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숲 속에 홀로 넓은 공간을 차지해 인접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나무들도 있는데, 이는 ‘폭목(暴木)’이라고 한다. 저자는 자기 분수에 넘치게 욕심을 내 주변에 민폐 끼치는 사람을 우리 사회의 폭목에 비유하면서 경쟁 속에서도 타협하고 양보하는 나무들의 양금신족 덕목을 강조한다. 호두나무, 유칼립투스, 단풍나무 등 자기방어 물질을 내뿜어 주변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식물을 통해서는 ‘자기 영토 안의 다른 세력을 그냥 둘 수 없음’을 비유한 ‘타인한수’를 소개하고, 이를 조직 내 바람직한 리더라는 화두로 연결한다.

책은 이런 흐름으로 총 24개 사자성어를 식물과 인간의 공통분모로 소개한다. 초록동색, 무위자연, 고군분투 같은 친숙한 말부터 모릉양가, 창이미추 등 조금은 낯선 표현까지 네 글자에 담긴 삶의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다. ‘서로 사랑하기’, ‘모두 함께 살기’, ‘끝내 살아남기’, ‘다시 돌아보기’의 등 총 4부로 구성됐으며, 식물 생태계의 몰랐던 이야기부터 인문·사회·문화·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도 풍성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다고 인간사 모든 게 식물과 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식물의 세계가 인간의 그것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롭다. 저자는 말한다. “사자성어 중에는 어리석음을 경고하거나 교활함을 경계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식물 세상에서는 그러한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인간 세상보다 더 정직하고 공평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래저래 식물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1만 7,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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