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추수감사절을 맞아 백악관에서 해외 주둔 미군 등을 격려하기 위한 화상 간담회 도중 두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14일 실시되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조 바이든 당선인이 이기면 백악관을 떠날 것이라고 26일(현지 시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지만 주요 경합주에서의 소송이 잇따라 기각되는 가운데 승복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기준이나 시점을 처음 언급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14일 선거인단 투표가 불복 정국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추수감사절을 맞아 해외 주둔 미군 등을 격려하기 위한 화상 간담회를 개최한 뒤 11·3 대선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진행한 문답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선거인단이 바이든 당선인을 선출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실수를 하는 것”이라면서도 백악관을 떠날 것이냐는 질문에 “분명히 나는 그럴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도 이를 안다”고 답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인단 투표를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중요한 계기로 보고 있음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패배 결과에 불복하면서 바이든 당선인의 내년 1월 20일 취임에 필요한 정권 인수 작업에 비협조로 일관하다 공화당에서도 비판 여론이 나오자 지난 23일에서야 정권 인수 절차에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중 선거 승복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평가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투표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백악관을 비우겠다는 첫 명시적 약속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이번 대선이 부정선거로서 수용할 수 없고 사기 투표가 없었다면 자신이 승리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3년간 명절 때마다 찾았던 자신 소유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대신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백악관 근처 버지니아주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라운딩을 했다. 그는 골프장에서도 트위터로 “개표 결과를 방금 봤다. 바이든이 8,000만 표를 받았을 리가 없다. 선거가 100% 조작됐다”며 자신이 패배한 대선 결과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추수감사절 저녁은 백악관에서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 막내아들 배런과 식사하며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전날 저녁 내놓은 메시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CNN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저녁 내놓은 추수감사절 포고문에서 “나는 모든 미국인이 집이나 예배 장소에 모여 우리의 많은 축복에 대해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을 장려한다”고 말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가족 모임 규모를 줄이라는 당국의 지침과 배치되는 것이며 바이든 당선인이 코로나19로 한자리에 앉지 못하게 된 국민들을 위로한 것과도 대조된다.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추수감사절이 “모든 슈퍼 전파의 모태”가 될 수 있다면서 실내에 여러 세대가 모이는 가족 모임은 취약 계층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또 바이든 당선인은 26일 CNN 기고문과 트위터를 통해 자신 역시 대규모 가족 모임 대신 아내, 딸 부부와 추수감사절 만찬을 할 것이라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국민들을 위로하며 함께 시련을 헤쳐나가자고 당부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패배 직후 마크 에스퍼 국방 장관 등 국방부 고위직을 교체한 데 이어 고위 자문단에 대한 물갈이 작업에 들어갔다. CNN은 이날 국방부 관리들을 인용해 국방부가 최근 국방정책위원회 일부 위원들을 면직했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에 외교정책 전문가 및 국가 안보 기관 인사들에 대한 또 다른 숙청이라고 보도했다. 국방정책위원회는 국방부 수뇌부에 외교·안보 정책 수립을 조언하는 자문 그룹이다. 면직된 위원에는 미 외교의 거두 헨리 키신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 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 에릭 캔터 전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을 비롯해 정보 담당 차관, 정책 담당 차관 직무대행, 장관 비서실장 등 국방부 고위직을 줄줄이 잘라내고 자신에 대한 충성파 인사들을 채워넣었으며 그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추가 감축을 발표했다. CNN은 “이런 일련의 조치는 향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려하는 군과 민간 관리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