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여론전 안 먹히나”...‘열대’ 말레이시아도 화이자 백신 확보했다

화이자 코로나19 백신./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전 세계 선진국들이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입도선매한 가운데 말레이시아가 동남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화이자 백신 확보에 성공했다.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이 큰 중국이 화이자 등 서방 국가의 백신을 비판하며 자국 백신을 홍보하는 ‘백신 여론전’에 나서고 있지만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인구 3,200만 말레이서 640만명분 확보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 중인 백신 1,280만 회분의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화이자 백신은 한 사람당 2회분을 접종해야 하는 만큼 640만명이 접종할 수 있는 양을 확보한 셈이다.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구매 계약은 동남아에서는 말레이시아가 처음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앞서 화이자-바이오엔테크는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면역 효과가 95%라는 3상 임상시험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무히딘 빈 모하마드 야신 총리는 “백신 접종은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이며 코로나19에 더 감염되기 쉬운 고위험 그룹이 우선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리 자말루딘 과학기술혁신부 장관은 이번 계약과 함께 별도 진행 중인 코백스(COVAX)와의 협의를 통해 내년 초까지 3,200만 명 인구의 약 30%에 접종할 충분한 백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백스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병혁신연합(CEPI) 등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목표로 추진하는 백신 공동구매·배분 기구다. 말레이시아에선 약 6만2,000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며 이 중 300명이 사망했다.

일각에서는 화이자 백신이 영하 70도 이하에서 보관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온다습하고 외떨어진 섬이 많은 동남아 지역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인도네시아의 에릭 토히르 국영기업부 장관은 “정부가 기업 때문에 특정 브랜드의 코로나 백신을 구매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백신이 2∼8도 사이의 우리 유통 시스템에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구매하지 못하는 이유는 각각 영하 75도와 영하 20도의 콜드체인(저온물류)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미국 같은 나라도 과도기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진국 입도선매에 물량 부족...그래도 차선책은 아스트라제네카?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정부는 칸시노바이오로직스, 시노팜, 시노백 등 중국 3개 제약사의 코로나백신 1,800여만회 분량을 확보했다. 연말까지 1인당 2회씩 총 910만명에게 접종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선진국들이 화이자 백신을 입도선매한 틈을 노려 신흥국을 대상으로 자국 백신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미국, EU,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화이자가 내년까지 공급할 수 있다고 밝힌 13억5,000만회분 중 약 90%를 선(先)구매한 상태다.

지난 24일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백신을 이용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해왔다”면서 “특히 미국과 영향력을 두고 다툼이 컸던 지역에서 중국 백신을 먼저 보급하려고 하는데 이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 백신 사용 승인에 서두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서방 제약사들은 이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 선주문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이 틈을 중국이 파고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보건당국은 올해 안에 자국 백신 사용을 승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정작 동남아 국가들은 화이자 백신의 차선책으로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를 택하는 모습이다. 태국 정부는 이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600만 회분 구매 계약을 맺었다. 같은 날 필리핀의 30여개 업체도 아스트라제네카 측과 최소 260만 회분의 코로나19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필리핀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측과 추가 100만 회 분의 백신 구매 계약을 논의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다급한 中 "서방이 악랄한 여론전 펼쳐"
중국 관영 매체는 서방 국가들이 자국 백신에 대한 ‘악랄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29일 논평에서 “서방 국가, 특히 미국 여론 기관들은 코로나19 백신에 관해 불공정한 캠페인을 벌이면서 중국 백신의 진척 상황을 추궁하고 있다”며 “반대로 미국과 서양 제약회사들의 진척 상황은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제약회사 화이자 등이 발표한 호재로 증시가 치솟기도 했었다”면서 “그러나 미국과 서방 기업들이 만든 백신의 개발 상황은 중국 백신과 같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산 코로나19 백신 3상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EPA연합뉴스

글로벌타임스는 또한 “양측의 백신은 완전히 다른 취급을 받고 있다”면서 “중국은 현재 백신 연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3상 임상시험에서 5개의 백신 후보를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 백신 개발의 문제는 중국이 코로나19를 잘 통제해 왔기 때문에 3상 시험의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이라며 “코로나19가 심각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가 백신 연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백신 개발에 몇 년이 걸린다. 그러나 일부 미국 기업은 이미 백신 상용화를 신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아울러 “중국은 백신을 세계의 공공재로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다”면서 “이는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을 보장하고, 서구의 백신 1, 2가지가 독점을 추구하는 것을 견제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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