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온택트 의원총회에서 이낙연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서 기업 규제 3법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은 입법 성과라는 실익에 비해 야당과 재계의 반발, 중도층 민심 이반 등의 손실이 더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에 비해 지지층의 관심은 물론 국민 주목도가 떨어지는 이슈인 데다 지난 임대차 3법 후폭풍 사례처럼 단독으로 무리하게 강행한 뒤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정치적 책임을 혼자서 짊어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먼저 여권에서는 단독 처리했을 경우 야당의 반발을 무마할 근거가 부족해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기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실제 국회법 58조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모두 공청회 대상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이 필수다. 제대로 된 공청회도, 충분한 법안소위 심사도 거치지 않은 법안을 반대하는 야당을 나무라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 정지 등의 여파로 대국민 여론이 악화 일변도인 것도 변수로 부상했다.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공수처법 하나도 통과시키기가 벅찬 상황에서 기업 규제 3법으로 전선을 넓히면 전략적으로 유리할 게 없다는 의견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년 4월 치러지는 보선에서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령대별로 보면 ‘정권 견제론’은 30·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정부 지원론’보다 우위를 보였다. 특히 지지 정당과 정치 성향별로 보면 무당층과 중도층의 정권 견제론은 각각 57%로 정부 지원론을 앞섰다. 강성 지지층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의 모습을 보일 경우 무당층과 중도층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여권 내 정무위 관계자는 “기업을 살리는 법이라면 일부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속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밀어붙일 수 있지만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은 사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며 “공정거래법 내용은 워낙 방대하고 쟁점도 다양해 일반 법안으로 따지면 7~8개로 쪼개서 봐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겉으로는 법안처리 연기 사유로 야당의 반발보다는 ‘핵심 쟁점에 대한 토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지자를 달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기업 규제 3법의 핵심인 상법 개정안 역시 이번 회기 내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이 부상하고 있다. 상법을 다루고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공수처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며 법안 심사에 한발 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법의 규모가 방대하고 조항별 이견이 많은 만큼 여당 역시 속도를 조절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상법을 심사하는 법사위 법안심사 1소위원회는 지난달 17일 첫 회의를 연 후 25, 26일 상법을 축조심사(의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면서 의결하는 일)했다. 25일과 26일 국민의힘은 법안심사 소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25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에 반발해 윤 총장을 법사위에 부르려고 했으나, 윤호중 법사위원장에 의해 제지당하자 법사위를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상법을 논의한 것은 15일 소위 중 1시간 30분에 불과하다. 아직 여야 간사는 추후 법사위 1소위 개최 일정조차 합의하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여당 내에서도 공수처법과 달리 상법은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상법은 범위도 넓고 이견도 많이 있는 법이다 보니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하다”며 “일방적으로 처리할 성격의 법안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오는 9일 공수처법을 처리하되 기업 규제 3법은 조금 더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낙연 대표는 이날도 “공수처법 개정은 이번 주 국회 법사위에서 처리를 시작해 정기국회 내 매듭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는 시종일관 기업 규제 3법의 정기국회 처리를 강조한 만큼 9일까지 여론의 추이와 야당의 대응 등을 지켜보며 단독 처리라는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여당이 과반을 차지한 정무위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소위 심사를 거치지 않고 전체 회의에서 두 법을 의결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길 수 있다. 전세 시장의 대혼란을 가져온 임대차 3법도 여당이 7월 상임위에 법안이 상정된 지 4일 만에 법사위와 본회의를 속전속결로 처리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여당이 내년도 예산안과 공수처 법안을 처리한 뒤 12월 9일 마지막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기업 규제 3법을 일괄처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진용·김인엽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