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서 나와...노인은 야외 벤치·청년은 지하 쉼터로

[강화된 거리두기 속 엇갈린 풍경]
실내감염 우려 노년층 야외 선호
탑골공원 등서 장기·바둑 대국도
지하철역 실내 상가엔 2030 북적
서점·패스트푸드점 등 몰리기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추운 날씨 속에 두터운 옷을 입은 채 장기를 두고 있다. /방진혁기자

# 1일 낮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영하에 가까운 매서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인 70~80대 어르신들이 바둑판을 둘러싸고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대국에서 진 뒤 복기하던 한 할아버지는 “어디 갈 곳도 없고 하니 매일 같이 다들 여기로 모인다”고 귀띔했다. 같은 시각 마포구 합정역 인근의 실내 상가 곳곳에 놓인 벤치는 20~30대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추위를 피해 이곳을 찾은 20~30대들은 실내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평소 이들의 단골 아지트이던 근처 커피숍들이 방역 당국의 거리 두기 강화 방침에 따라 매장 내 착석을 모두 금지한 탓이다. 지하철역 인근 실내 상가 속 벤치가 젊은이들의 새로운 휴식처가 된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층 격상되면서 세대별 대처법도 엇갈리고 있다. 경로당을 비롯한 복지시설의 휴관으로 갈 곳 잃은 노인들은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야외 공간으로 몰리는 반면 젊은 층은 실내 쉼터나 서점 등 기존 휴식처 역할을 해온 커피숍을 대체할 만한 공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1일 서울경제 취재진이 찾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는 ‘장군, 멍군’을 외치는 노인들의 장기 대국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앞서 찾은 종묘공원이 바둑의 성지라면 탑골공원은 장기 대국의 장인 셈이었다. 당초 종로구청은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탑골공원에 있던 의자와 테이블을 모두 회수했지만 인근 경로당이 임시 휴관에 들어가며 노인들이 갈 곳이 사라지게 되자 다시 의자와 테이블을 갖다놨다. 장기를 두지 않는 노인들도 인근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이곳을 찾는다고 전했다. 조만석(80) 할아버지는 “환기가 되지 않는 실내는 감염될까 무서워서 공원을 자주 찾는다”며 “또래 친구들과 장기를 두고 막걸리를 마시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고 말했다.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각 공원 인근의 야외 포장마차에서는 노인들이 한데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카페 내 착석이 금지되자 20~30대 시민들이 추위를 피해 합정역 인근 실내 상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방진혁기자

반면 젊은 세대들은 실내 공간을 보다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합정역 실내 상가 외에도 광화문역 인근 대형 서점은 물론 근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도 20~30대 젊은 층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 실내 공간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도 2030 세대의 발길이 더욱 몰리고 있다. 3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커피숍 내 착석이 금지되면서 카페 대신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시킨 뒤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일이 잦아졌다”고 전했다. /글·사진=방진혁기자 bread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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