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태원의 인디언 모터사이클 매장에 다녀왔습니다. 건물만으로도 이미 핫플레이스의 느낌을 풍기는 곳이죠. 거기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모터사이클 제조사’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지니 ‘누추한 제가 이런 곳엘...?’이란 느낌마저 듭니다.
저는 사실 예전부터 인디언의 FTR1200에 눈독을 들여왔습니다. 아직 타본 적은 없지만 너무 예쁘게 생겼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앉아 보고 감탄하고 지를까 고민하고, 매장에서 북치고 장구치다 왔습니다. 다시 사진을 보면서도 너무 예뻐서 한참을 쳐다보고 맙니다.
위 왼쪽이 FTR1200s, 오른쪽은 로드마스터 다크호스, 아래는 스카우트의 화사한 계기판.
인디언 모터사이클 하면 ‘1967년 버트 먼로’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뉴질랜드인인 버트 먼로는 1967년에 미국 유타주 본네빌 소금사막에서, 그러니까 수 마일에 걸쳐 소금 평원이 이어지며 아스팔트보다 마찰이 적어 속도계를 테스트하기 딱 좋은 그 곳에서 시속 296.3km(184.087mph)의 세계 최고 기록을 낸 바 있습니다. 그리고 먼로에게 그 영광의 순간을 가져다 준 바이크가 바로 인디언 스카우트 스트림라이너입니다.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버트 먼로는 이 매끈하게 개조한 600㏄ 바이크와 함께 무려 205.67mph(시속 331㎞)의 속도까지 경험했다고 전해집니다.
버트 먼로와 인디언 스카우트 스트림라이너. /사진제공=인디언모터사이클
당시로서는 무시무시한 속도였을 겁니다. 이런 역사적인 기록이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닙니다. 모터사이클 판매원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 그는 1926년 은행 잔고를 탈탈 털어서 자신의 스카우트를 개조하기 시작합니다. 1920년식 순정 스카우트의 최고 시속은 89㎞에 불과했지만, 먼로의 거듭된 개조와 밤잠을 설친 노력 끝에 1940년대부터 뉴질랜드 최고 속도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15년 가량의 꾸준한 노력이 빛을 발한 셈입니다.
뉴질랜드에선 더이상 그의 속도를 측정할 만한 평원이 없게 되자, 뉴질랜드에서 1만2,875㎞ 떨어진 미국 본네빌의 소금사막에 도전했습니다. 본네빌로 갈 때마다 뉴질랜드의 가족들에게는 “못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걱정 마시오. 난 모터사이클을 사랑하고, 그런 방식으로 떠나고 싶으니까 말이오(서프라이즈 풍).”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먼로는 아홉 번의 도전 중 세 번이나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 기록을 기록한 1967년 8월 26일, 그의 나이는 68세였습니다. 그날 세계 최고의 기록을 세우고도 재차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70대까지도 정정하게 본네빌 사막을 달렸다고 하네요. 아직 그보다 훨씬 어린 주제에 편안한 일상에 안주하려 드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도전을 앞두고 헬멧끈을 매고 있는 버트 먼로. /사진제공=인디언모터사이클
버트 먼로의 끈질긴 도전과 성공은 많은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줬고, 인디언 모터사이클도 영감을 얻어 자사의 DNA에 버트 먼로의 스피릿을 새겨넣기 시작합니다. 새 모터사이클을 기획하는 단계서부터 그의 정신과 업적을 재해석해 모티브로 삼는 거죠. ‘과거의 영광이 미래를 이끄는 힘이다(Honoring the past, Powering the future)’라는 슬로건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습니다.
사진제공=인디언모터사이클
인디언 스카우트, 인디언 스카우트 패밀리 라인,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모델이자 레이싱 승리의 상징인 FTR(모델명부터가 플랫 트랙 레이서·Flat Track Racer) 라인은 그 스피릿의 정수를 담은 모델들입니다. 특히 인디언 스카우트는 바로 그 스카우트, 먼로의 1920년식 스카우트를 계승한 모델로 헤드라이트, 핸들 바, 펜더 등에서 그 느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33cc의 배기량에 100마력, 97.7 Nm의 토크를 발휘하는 힘찬 녀석이지만 낮은 시트고(649㎜) 덕분에 다루기 어렵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2021년식 인디언 스카우트. /사진제공=인디언 모터사이클
버트 먼로가 더 궁금하신 분들께는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주연 안소니 홉킨스)’을 추천해 봅니다. 유튜브에서도 버트 먼로의 다큐멘터리(한글자막 없음 주의, 링크 클릭), 인디언 모터사이클에서 자체 제작한 트리뷰트 영상(링크 클릭)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갈구하는 유 모씨(낼모레 마흔)
추위들 조심하시고 다음 회에서 뵙겠습니다. 굿바이~~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