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일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4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전해철(왼쪽부터) 행안부 장관 후보자, 권덕철 복지부 장관 후보자,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 정영애 여가부 장관 후보자./연합뉴스
콘크리트 같던 40%대 지지율이 추락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결국 국면 전환용 ‘개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으로 중도층은 물론 핵심 지지층마저 흔들리자 정부 부처 수장을 교체하며 분위기 반전에 나선 것이다. 야권의 줄기찬 경질 요구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개각 대상에 포함된 것이 그 방증이다. 다만 추 장관은 이번 개각에서도 교체되지 않아 검찰 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소신을 다시금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는 10일 윤 총장에 대한 검사징계위원회에서 징계 수위가 결정되고 ‘추·윤 정국’이 수습된 후에야 추 장관을 포함한 2차 개각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이 4일 단행한 인사는 ‘국면 전환용 인사는 지양한다’는 기존의 인사 스타일과 거리가 있다. 최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 가운데 임기 말 레임덕 가능성을 조속히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묻어난다는 정치권의 해석이 나온다. 이날 인사 발표에 앞서 오전에는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인 39%를 기록했다는 한국갤럽 조사(오차 범위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결과가 나왔다. 지난 1~3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역대 최저치는 ‘조국 사태’가 터진 지난해 10월 셋째 주와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이 불거진 올 8월 둘째 주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인사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원년 멤버’이자 최측근인 김 장관의 교체다. 김 장관은 ‘24번의 부동산 정책에도 집값을 잡지 못했다’는 국민적 비판을 받아왔지만 문 대통령의 변함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3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추·윤 정국으로 여론이 급격히 얼어붙자 2차 개각 때 교체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일찍 자리를 떠나게 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달라진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인사”라며 경질론에 선을 그었으나 이번 인사는 사실상 악화한 여론을 다독이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개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여성가족부 등 4개 부처 장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3철’ 중 하나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입각도 눈에 띈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비서실장으로 재임할 당시 민정수석을 지내며 호흡을 맞췄다. 3철 가운데 처음으로 입각한 전 후보자는 이날 취재진들과 만나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면서 “선거 관리를 해야 할 부처로서 당연히 엄정하게 중립적으로 잘 관리할 것”이라고 취임 일성을 전했다.
추 장관의 교체 여부에도 관심이 쏠렸으나 이번 개각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추 장관의 무리한 윤 총장 징계 강행이 문 대통령 지지율 급락의 주요 원인이었지만 추 장관을 교체할 경우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윤 총장 징계를 요구하는 핵심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어떤 식으로든 자리에서 물러난 후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재유행이 시작된 가운데 방역 사령탑도 교체됐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재임 기간이 3년을 훌쩍 넘어 피로도가 누적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교수 출신인 박 장관의 후임자로는 정통 관료 출신인 권덕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원장이 발탁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위중한 만큼 유력 정치인이 복지부 장관을 맡아온 전례를 깨고 실무에 밝은 내부 출신 인사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연초로 예상되는 2차 개각 때는 장관 다수가 교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롯해 재임 기간이 2년을 넘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최근 추·윤 갈등의 해결사를 자처하며 대권 주자 행보를 넓히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거취도 주목된다. 정 총리와 관련해서는 2차 개각 무렵 장관들과 함께 교체되거나 내년 4월 재보궐선거 후 대권 출마 선언과 함께 물러나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