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데뷔 18년 차 배우 한지민은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드라마 ‘아는 와이프’, ‘눈이 부시게’, ‘봄밤’까지 연달아 히트시킨 그는 영화 ‘조제’를 통해 한층 짙은 멜로 연기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2004년 개봉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조제’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잊을 수 없는 이름의 여자와 남자가 함께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한지민은 우연히 만난 영석(남주혁)을 통해 처음 경험하는 사랑의 감정에 설렘과 불안을 함께 느끼는 ‘조제’를 연기했다. 장애를 가져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책을 통해 세상을 접할 수밖에 없지만, 영석과 만나며 그에게 마음의 자리를 조금씩 내어준다.
한지민은 사랑이 시작되는 설렘에서부터 가슴 아픈 이별의 과정을 섬세한 감정 연기와 눈빛으로 그려내며 관객을 오롯이 자신의 감정 안으로 이끈다. 작품이 일본 원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지만, 한지민은 조제 캐릭터에 자신이 해석한 색을 입혀 새롭게 만들어냈다.
Q.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소설, 영화 모두 국내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원작의 팬으로서 좋은 지점을 잘 살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부담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인 것 같다. 일단 촬영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이후 부담 보다는 시나리오에 표현된 조제를 나만의 색을 입혀 만들고 싶었고다. 김종관 감독이 그린 조제를 온전히 담으려는 부분에 집중했다.
Q. 새로 탄생한 ‘조제’를 어떻게 표현했고, 어떠한 노력을 했나.
-조제는 신체적 장애가 있지만, 동선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조제의 세계가 표현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보통의 캐릭터는 색깔이 명확하다면 조제의 세계는 독특하고 특별해 보이기는 하나 워낙 감정선이나 본인에 대한 표현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조제의 세계에 들어가는 부분에 집중해서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가장 고민했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Q. 한지민이 생각하는 조제는 어떤 인물인가.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과연 나는 조제를 다 이해했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어려웠다. 조제의 언어가 명확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캐릭터가 아니니까. 그래서 뭔가 낯설지만 특별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조제 자신도 워낙 사람과의 관계에 한정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라, 감정 표현이 좀 서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에 본인도 어색했던 사람 아닐까. 결과적으로 영석이를 통해 조금씩 용기를 내보는 인물이다.
Q. 조제를 연기할 때 감정소모도 컸을 것 같다.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힘들지 않았나.
-정말 힘들었다. 너무 솔직한가?(웃음) 감정적으로 깊어지는데 혼자 느끼는 감정 자체를 분출하고 표출하는 신이 적어서 어디까지 표현해야 될까 물음표가 많았다. 매 장면마다 감독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조제의 소리, 언어에 어느만큼 감정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결이 달라질 수 있어서 그 지점을 잡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보통 사람이 사랑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하나는 아니다. 설레임, 슬픔, 불안 등 여러 감정이 있을 텐데 조제는 그저 눈빛이나 담담한 언어로 표현해야 했다. 그래서 연기할 때마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늘 확신이 있던 감독을 믿고 따라갔다. 공간이 주는 기운과 소리를 담아 쓸쓸함, 차가움 때로는 따뜻함을 채웠다.
Q. 조제의 말투나 톤이 독특하다.
-조제의 말투가 처음에는 문어체라고 느꼈다. 책으로 세상을 접하는 사람이고, 할머니 외에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다 보니 구어체보다 문어체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말투에 대한 설정과 톤을 잡아내려는 것보다 조제가 가진 복합적인 감정들을 생각하며 내뱉다 보니 그렇게 표현된 것 같다. 일부러 독특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Q. 조제와 영석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나
-조제는 과연 영석이를 어느 지점부터 사랑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본인도 모른 채 서서히 잔잔하게 스며든 것 같다. 워낙 한정된 공간에서 자기의 세계가 구축돼 닫혀있는 삶을 살던 인물이다. 혼자 책을 구하러 외출하는 자체가 큰 용기였는데, 그곳에서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고, 영석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줬기 때문에 만남이 시작됐다.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기에 ‘밥 먹고 가’라는 서툰 표현 자체가 고맙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점점 자신의 공간 안에 영석이를 들이게 된다. 처음엔 거실에 앉아서 내가 차려준 음식을 대접하고 주방이란 공간에서 옆자리를 내어준다. 조제가 수집해놓은 위스키방을 소개하기도 하고. 책으로 가득 둘러 쌓인 방에 영석이를 들이며 마음을 열게 된 것 같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Q. 일본 원작에서 연기한 일본 배우 이케와키 치즈루와 한지민의 연기에 있어 좀 더 다른 매력이 있다면?
-원작은 20대 초반의 캐릭터로 더 발랄하고 사랑스러움이 있다. 조금 더 직설적인 표현들이 많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부분이 원작의 매력인 것 같다. 내가 표현한 조제는 동화같은 표현을 하는 인물이다. ‘영석이가 옆에 있어줘서 무섭지 않고 고마워’란 이야기를 ‘호랑이가 담을 넘어 왔어도 난 무섭지 않았을거야’라고 표현하는 지점들이 그렇다. 할머니가 떠나고 슬펐을 조제이지만 그 슬픔 또한 표출하지 않는다. 나중엔 로드뷰에 비춰진 할머니 뒷모습을 보고 나서 옆에 영석이가 있어주는 것에 고마움의 표현으로 코에 입맞춤 하는 것들이 원작과의 차별된 매력이다.
Q. 원작과의 차별점과,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느낀 점은 원작이 사랑하는 과정과 이별의 과정이 섬세하게 담겼다면 ‘조제’는 열린 결말을 드린 것 같다. 이별에 대한 과정보다는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는데 초점을 맞췄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보니 두 사람이 이별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만들기보다 이 둘을 감싸고 있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게끔 한 게 차별점인 것 같다. 사실 실제로도 이별을 앞두고 단 한가지 이유를 정의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런 점을 감독과 많이 이야기했다.
Q. ‘눈이 부시게’ 이후 남주혁과 두 번째 호흡이다.
-‘눈이 부시게’에서 남주혁과 많은 장면들을 연기한 것은 아니었다. 워낙 ‘눈이 부시게’라는 작품을 좋아하고, 남주혁과 호흡도 좋았었기에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쉬움을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 자체도 ‘눈이 부시게’와는 달랐다. 저희가 보여드릴 다른 색깔들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눈이 부시게’에서는 내가 이끌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짙었다. 반면 ‘조제’에서는 내가 의지했다. 존재 자체가 든든했다.
Q. ‘조제’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또 한 번의 성장통을 겪는 느낌이다. 작품을 끝내고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길게 여운이 가지 않았을 텐데, 조제라는 캐릭터 자체가 나에게는 또 하나의 모험과 여행 같았다. 조제는 워낙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기존에 해왔던 캐릭터와는 달랐다. ‘나 자신도 조제의 세계를 다 알고 연기했을까’ 내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연기하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배우로서 만들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여전히 조제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있는 것 같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Q. 영화 ‘미쓰백’으로 많은 상을 받았고, 배우로서 주목을 받게 됐다. 앞으로 각오가 있다면
-상의 무게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개봉을 앞두고는 워낙 여러 가지 감정이 생긴다. 부담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어떠한 작품을 하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따라오는 게 부담이다. 얼마만큼 내 자신이 부담을 떨쳐내고 캐릭터를 표현하느냐가 숙제이고 운명인 것 같다. 배우가 보이기보다 캐릭터로 온전히 보여질 때 받는 위로나 공감이 더 크더라. 욕심을 내보자면, 한지민이라는 배우가 작품 안에 조화롭게, 캐릭터로서 스며들고 싶은 욕심이 항상 있다.
Q. 앞으로도 새로운 역할로 변신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나
-캐릭터로 인해 배우의 삶과 성격도 바뀐다.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캐릭터로 살아가다 보니까 나도 훨씬 단단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겁도 더 많고 최악을 놓고 고민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여러 캐릭터의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덜 흔들리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으나, 앞으로의 내 자신이 기대되고 시간의 흐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낸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떠한 변화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그런 설렘이 있다. 한지민으로서 이렇게 변화한 내 자신이 만족스럽다. 물론 내 모습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 유연해지는 것 같다.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